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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May 29. 2022

비가 오는 수영장

제목은 낭만적이지만 읽다보면 웃긴, 웃픈 글.

어젯밤에는 원피스만 입고 수영을 했다.


그동안 벌건 대낮에 수영을 하면서 그때마다 위아래 긴 래시가드를 입고 다 가렸는데,

어제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하는 저녁 수영이어서 원피스만 입고 수영장엘 들어갔다.





임신이 아니었다면 이 육중한 몸을 남편 앞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건강을 위해 매일 유산소와 웨이트를 하기 때문에 몸이 좋지만 나는 평생 운동보다는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를 해왔고, 식욕조절에 실패하게 되면 몸무게는 10킬로그램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나는 평생 통통 한 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통통해서 친정오빠는 물론 학교와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는 돼지로 불렸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달리기와 수영을 잘했는데 아이들이 나를 '날으는 돈가스'로 불러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돼지라고 불리면서도 식욕을 참을 수 없었으나, 멋진 총각 선생님이 나의 고등학교 첫사랑이 되어주셔서 좀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다이어트를 하게 된 것이다.

아침저녁 등하교 때마다 버스를 타지 않고 20분씩 걸어 다니고,

점심은 먹는 양의 반틈을 줄이고,

야자시간 전에는 저녁을 먹지 않고 매일 줄넘기를 1000개씩 했더니,

고등학교 1학년 다닐 동안 살이 10킬로그램이 빠지고,

그 뒤로 수능 칠 때까지 그 몸무게를 유지했다.


그리고 수능 치고 대학에 합격하면서 저녁을 굶고 동네 헬스장을 찾아가, 걷기와 달리기를 30분씩 매일 하고 잠에 들었더니 5킬로가 더 빠진 것이다.


처음으로 50킬로그램대에 들어서면서 내 몸에 허리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 뒤로 대학생활 내내 식욕을 참고 물만 마시며 캠퍼스를 걸어 다녔다.

다들 나의 소싯적 돼지 생활은 추측도 못할 정도로.


그런데,

한 대학 동기가 겨울에 나를 처음 보고선 여름이 되자,

내 몸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깜짝 놀라 말했다.

"정글이는 얼굴만 보면 44 사이즈 같은데 몸보고 깜짝 놀랐다."

라고 ..

촌철살인이었다.


그렇다.

어릴 때부터 통통했던 내 엉덩이와 허벅지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활 내내 스커트를 입고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됐고,

남편에게는 내 통통한 몸매를 보이기 싫어 첫째가 태어나고 12년이 지난 동안 단 한 번도 나체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살이 안 찐 건 아니었다.

첫째가 몸에 들어섰을 때 살은 점점 붙기 시작했고,

남편은 내가 본래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임신중독증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한 달이 다르게 몸무게가 쑥쑥 불어나는 것을 보고 나의 건강을 무척이나 걱정했다.




첫째를 가진 어느 날 ,

남편은 야식이 당긴다면서 비빔면을 끓여먹자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를 끓일까 두 개를 끓일까 물어보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먹을 의향이 있으면 두 개를 끓일 것이라는 것이다.

 순간,

 남편이 나의 건강을 걱정할까 싶어 그냥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대로 남편은 비빔면하나를 끓였고,

다 끓인 라면에 비빔장 수프를 넣고 비비더니 자기가 먹기 전에 내게 한 입을 권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주는 대로 한 입을 먹었는데 면이라서 쉽게 끊기지 않는 것이다.

면이 면을 부르고 또 그 면이 다른 면을 부르는데 나는 들어오는 대로 후루룩 흡입하고 있으니 비빔면 반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남편이 내 입에 들어온 면을 다시 잡아당기면서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기도에 걸릴까 봐 걱정이 되어서라고 말이다.


'기도에 걸리는 게 아니라 면이 없어지는 게 아까워서 그랬겠지. '


순간 서러움이 북받쳐오는 것이다.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그 설움이 말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식욕을 참아가면서 임신 막달이 될 때까지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조심하며  조심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늦둥이 둘째가 들어섰다.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것도 해외로 와서 남편과 가진 첫 관계에서 아이가 떡 하니 들어선 것이다.

남편은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고,

나 또한 기다린 보람이 있어 기뻤다.

그리고 내 몸 또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생기자 처음에는 입덧이 심해 몸은 음식을 거부했다.

그러다  4주가 지나자 식욕이 고개를 들었다.

내 몸은 평생 기다리던 음식을 마구마구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뱃속의 둘째도 마구마구 음식을 먹었고,

내 몸도 마구마구 음식을 먹었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남편에게 "둘째"먹고 싶어 한다고 말했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고 싶은 음식을 모두 다 먹으라ok 해주는 것이다.


점점 몸이 붓기 시작했다.

남편은 임신중독증이라도 생길까 봐 간단한 걷기라도 하라고 했다.

그러나 호찌민의 공기는 임신부가 걷기엔 너무 후끈하다.


그래서 집 앞 놀이터같이 생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쇼핑몰에 가서 수영복을 샀다.

위아래 모두 가릴 수 있는 잠수복 같은 수영복을.

그러나 수영을 하고 나서 문제였다.

매일 그 긴 물미역 같은 수영복을 빨고 나니 내 몸이 축 늘어진 물미역이 된 것이다.

너무 힘들었다.

매일 하던 수영은 이틀, 일주일...,

수영을 하는 게 점점 뜸해지게 되었다.


이를 걱정하던 남편이 토요일에 찾아와 함께 수영을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 자고 했다.

남편은 흔쾌히 허락했고,

우리는 집 앞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수영복을 입으러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바로 잠들기 좋게 나른했는데,

수영하기가 너무 귀찮은 것이다.

밤인데 누가 볼까 싶어 원피스 수영복 하나 만 입고 위에 긴 남방으로 몸매를 가렸다.

남편은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수영장에 도착해 썬베드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윗 옷을 벗으려는데 남편이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고, 

남편과 아들을 수영장으로 먼저 보냈다.

수영을 하던 그들에게

나는 다가갔다.


원피스만 입은 채로..


몸에 물이 바로 닿는 느낌이 짜릿했다.

남편의 시선이 내게 와닿았는데 찌릿했다.

빨리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쳤다.

남편이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다.


나는 더욱더 빨리 속도를 내었다.

남편은 내 뒤를 더욱 바짝 따라오는 것이다.

벽까지 다 달으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턴을 할 수 없었다.

난 물 위로 올라왔다.

남편도 물 위로 올라왔다.


잠시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는 것이다.

폭우처럼 말이다.


그 순간 하늘이 고마웠다.


내 육중한 몸을 담고 있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내 몸을 적셔주니 말이다.

온몸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내 살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춥다고 얼른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더 있겠다고 했다.


너무나 운치가 있다고 말이다.


칠흑 같은 깜깜한 밤.

나는 수영장에서  비를 맞으며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2022.05.29

브런치 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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