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아일기

D-1

당신의 탄생에 애써준 수많은 사람들.

by 햇살나무

38주

벌써 3.3킬로가 된 다솜이..

지금은 하루에 100그램씩 늘고 있다.

만약

40주까지 기다렸더라면, 4.2킬로가 되어 태어났을 테지만,

이곳 베트남은 37주를 만삭으로 보고 있고, 나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39주에 아이를 낳기로 했다.


다솜이의 태동은 무척이나 힘차다.

거짓말 안 보태고 그냥 배를 찢고 나올 것 같다.


앉아 있으면 D자로 나온 배 때문에 허리가 아프고,

서 있으면 아래를 짓눌러 양수가 터질까 조마조마하고,

누우면 다솜이 무게가 나의 장기를 눌러서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편하지가 않다.


누워있는 것이 제일 불편하다.

누워 있으면 다솜이 머리가 내 갈비뼈를 밀어내고, 위와 명치를 누르며, 폐도 눌려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다.

큰 물집이 내 뱃속에 크게 자리 잡은 것 같다.


나는 너무나 힘들지만,

주변에서는 곧 태어날 다솜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있기만 하다. 남편이 그렇다. 남편은 딸이 생긴다는 생각에 해맑기만 하다.


또 일부 주변에서는 산모의 고통을 몰라서 나의 괴로운 입장을 헤아려주지 못한다.

늘 밝아라. 아기만 생각하라고 하지만 내 생명마저 위협하는 고통 앞에서 그리 의연해지고 평소처럼 덤덤해지기는 힘들다.

또 아기를 낳아보지 않은 이들은 정말 힘들겠다고도 한다. 애 낳으면 앞으론 외출도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있기만 해서 우울증이 생길 텐데 라며 걱정 어린 멘트를 날린다.

이런 걱정이 듣기가 힘든 건,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2-3시간 겨우 쪽잠을 자고, 이 생활을 9월부터 시작해 나날이 수면이 점점 더 부족해지니 물을 머금은 솜이불처럼 처지고, 정신은 점점 더 혼탁해지고 혼미해지는 탓이다.


나는 벌써부터 살이 빠지고 다솜이 무게는 늘고 있다.

임신해서 살이 쪘을 때 그 걱정은 이제 걱정이 아니다.

그때는 만사태평하고 좋았던 때다.

이렇게 힘든 생활 일 년이면 20킬로도 빠질 것 같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므로,


내일의 고통에 내 몸은 벌써부터 불안하다..




개천절이 생일이던 내 소꿉친구는 나의 축하 메시지에서 우울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우울의 나락으로 또다시 빠지고 있었고, 긴박하게 통화를 하자며 손을 내민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이야기를 해. 인생은 불행한 일 속에서 행복한 일 한 가지를 맛보기 위해 사는 것 아니겠냐고. 나도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연세 드시는 부모님 생각에 가끔씩 나도 짠해져. 우리 같이 힘내자."


철없이 티격 대던 우리의 동심은 어디 가고, 무르익어 성숙해진 친구의 해탈이 느껴지는 말.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그녀가 겪었을 고통들과 그녀를 무르익게 한 그 세월들을 회상하게 됐다. 그녀도 나 만만치 않게 치열하고 힘든 자기와의 싸움을 했었으리라...

불안해서 울고 있는 이 철없는 산모에게 , 경험도 해보지 않았는데도 무덤덤하게 친구는


"울지 말고~ 건강하게 다솜이 만나야지.^^"

라며 진정으로 응원해준다.





수술을 앞두고 걱정하는 나에게 베트남 이모는 제왕절개로 아이가 태어나는 영상 세 편을 보여주며

"돈 워리~돈 워리~"라며 애써 위로해준다.

'건강하게 태어날 거야. 걱정하지 마.' 라며 웃어줬지만

내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눈물의 이유는 내 몸에 칼을 댄다는 두려움과 태아의 자세 때문에 수혈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이었는데..


또다시 걱정하고 슬퍼하는 내게

말이 통하지 않는 베트남 이모는 내 마음을 읽는 듯,

구글 번역기를 돌려 말을 걸어온다.


"마담. 나는 당신이 이 먼 나라에서 부모님 없이 아이를 낳는 것을 안다. 하지만 걱정마라. 나는 네 곁에 24시간 있어줄 것이다. 너에겐 남편과 아들이 있지만 마담은 남편과 아들을 챙겨줘야 한다. 그들을 챙겨주는 것 또한 내가 도와주겠다. "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나는 표시 낼 수 없었지만, 밀려오는 눈물에 코끝이 따가워지며 참았던 설움이 용암처럼 가슴에서 솟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당차다.

베트남 군 간호사로 15년을 근무하다, 자신의 쌍둥이 딸 하나를 사고로 잃고 아기 돌보는 일로 전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행동엔 절도가 있고, 믿음이 있기에 타국에서 만나기 힘든 이런 사람을 베이비시터로 만나는 것도 천운인 듯싶다.





친정엄마는 자다가도 새벽에 벌떡 깨어나신다고 한다.

게을러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다솜이의 건강한 탄생을 빌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친정엄마의 기도 덕에 나는 분만을 앞두고 조금이나마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모두 이런 탄생을 통해 세상을 왔고, 험한 세상을 견뎌왔다.

나는 내가 고생하여 만날 새 생명의 탄생으로 인해

내게 응원과 격려, 위로를 해주는 모든 사람들의 탄생과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존재는 내가 느끼는 이 느낌들처럼


누군가의 숱한 불안과 설렘의 반복이었음을...



2022.10.06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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