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아일기

D+2

모든 게 낯선 두 번째 출산.

by 햇살나무

첫째 아들은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뭐든지 좋은 것만 고집했던 지난날의 .

자연분만은 산모의 회복에 좋고, 아이의 참을성과 자립심을 기르기 좋다는 글을 읽었더랬지만, 아들은 내 뱃속이 좋아서 예정일이 되어서도 나올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10일 뒤 다시 가서 체크를 한 뒤에도 나올 모양새가 아닌 것을 안 의사 선생님은 유도분만을 하자고 하셨다.

그때 이미 의사 선생님은 내게 제왕절개까지도 생각하라 권유하셨지만. 나는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끝까지 자연분만으로 밀고 나갔다.


자연분만을 하면 쉽게 순풍~하고 나온다고 누가 그랬나. 유도분만제를 받고서도 52시간이나 지나야 애가 나왔다.

그동안에 내 몸엔 간호사의 주먹이 열 번은 넘게 쑤셔왔고, 무통분만제도 하반신이 녹아 없어질 만큼 오래 맞았다. 막달 막일에는 폭풍성장을 하는 태아의 특성을 모르고 있었다. 예정일보다 10일이나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난 아들의 두위는 예상 밖의 수치였다.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오지 않던 아들.

결국 아이의 머리를 흡입시키는 겸자 분만 방식의 기계 도움으로 분만을 한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내 몸에 오래 머무르다가 양수 내에 태변을 쌌고 그것을 먹은 아들은 급기야 황달 증상까지 보여 검사를 해야 했다.

다행히 황달은 아니었다.

대신 울긋불긋한 태아의 피부색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온몸이 하얬던 아들은 주수도 다 채우고도 한주나 지나 나왔기에 이목구비까지 또렷해서 간호사 언니들이 너무 예뻐해줬다. 그렇게 그들은 아기이름대신 "뽀얀돌이"란 이름으로 조리원을 퇴원할 때까지 불러주었다.




어쩌다 타국 살이 시작하는 중 12년 만에 한방에 들어선 다솜이는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결심했다. 자연분만으로 첫아들을 고생 고생하여 낳고 나니 영 자신이 없었다. 52시간 틀고, 머리는 커서 아래를 얼마나 길게 쨌는지 회복하는 데에만 몇 주 이상이 걸렸었더랬다. 아기가 작으면 덜 째도 되는데. 너무 커서 좀 많이 째는 바람에 용변을 보는 일을 4주 동안이나 어려워해야 했다. 변이 무르게 나오는 약을 달고 살고, 음식도 변이 잘 나오는 식이만으로 대체해서 먹어야 했다. 자연분만이 모두에게 좋은 줄 착각하고서 크게 고생한 나로서는 둘째는 무조건 제왕절개였다.


베트남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자연분만이 회복에 좋다고 하셨으나, 아이의 머리가 거꾸로 있으니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겁을 주셨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마음을 먹은 상태라서 흔쾌히 오케이" 괜찮다고 대답했다.

끝까지 자세를 바로잡지 않은 다솜이 덕에 결국 나는 뜨거운 여름나라에서 노산임에도 39주라는 어마한 주수를 채우고 제왕절개 분만을 하게 되었다.


바로 이틀 전 오전 아홉 시에 분만을 위해 산부인과로 입원했다.


아홉 시 입원 후 호텔 같은 병실 안에서 산모 가운으로 갈아입고, 혈압과 맥박 검사와 피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온몸 구석구석 샤워를 하라고 하시며 초록색병에 든 액체를 주었다. 그 액체는 빨간색이었고, 타월에 액체 반틈 이상을 뿌려 샤워를 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내 깨끗한 몸을 세상을 남기고 떠나는 듯한 기분.

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지. 새 생명을 품에 안으려면 깨끗이 해야지.

지금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그렇게 경건한 샤워시간을 끝내고 나서 누워있는데 수술시간 오후 두 시가 가까이 되자, 비워져 있던 옆칸으로 방금 분만을 끝낸 산모와 태어난 아기가 함께 들어왔다.

자연분만인 듯했다.

'저 고통을 어찌 이겨냈을까. 나도 빨리 분만이 끝났으면. '


수술실에 같이 들어가기로 했던 남편은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는 의연했지만 자기가 더 떨린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도 떨리기 시작했다.

결국, 간호사 몇 분이 와서 나를 이동용 침대로 옮기고 수술실로 향했다. 그때부터 약 한 시간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환희의 시간이 그 한 시간 동안 수술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포에 사로잡혔다.


'마취가 안되면 어떡하지'

'내 배를 가른다고?'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탈의를 하고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본 베트남 간호사들은 저마다 내게 다가와 안심하라며 "돈워리~~돈워리"라는 말과 함께 발을 주물러주고 손도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곳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다. 간호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소리에 내 마음도 한결 나아지는 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만 하며 내게 찾아와 인사하려는 과호흡을 물리쳤다.


그러다 척추에 하반신 마취 주사를 맞고 난 그 이후로 모든 게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남편이 곧 들어왔고, 큰 막처럼 생긴 천으로 내 상반신 반 정도의 위치에 설치하여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아 수술 장면은 보이지 않게 했다. 남편은 내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해주었고. 나와 남편이 웃는 사이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애응애~"


"내 딸인가? 오빠, 내 딸이 이렇게 우는 거야? 세상에 태어난 거야? 다솜이가 나온 거야? "

"응. 다솜이다. 다솜이 나왔어."


나는 서럽게 울었다. 방금 전까지 남편과 하하호호 웃으며 농담을 했더라도 아기의 탄생 순간엔 벅차게 기쁜 감정 말고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의 목소리는 굉장히 크고 우렁찼다. 첫아이 때는 태변을 먹어서 목이 쉬고 가래가 낀 것 같은 둔탁한 울음소리였으나, 둘째는 새 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울었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게 다 끝난 안도감과 그동안 고생스러운 임신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시원하고도 서러운 감정에 북받쳐 울던 나. 그런 아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던 남편의 목소리에서도 기쁨과 긴장이 교차하는 듯 떨리는 마음이 스며들어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페인큘러라는 진통제를 주사로 맞고, 또 입으로 먹고, 또 좌약으로 넣어가면서 훗배앓이를 이겨내고 있다.

자연분만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분만 후 하루 만에 걸어 다녔다. 정말 아프지만, 걷지 않아서 6주 동안이나 아팠다던 산모들의 후기를 읽으며 나는 죽기 살기로 걷고 있다.

걷는 건 정말 죽을 맛이다.

그러나 6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아프게 누워있는 건 더 싫다.

다솜이에게 모유를 꼭 먹이고 싶어서 아픔을 이겨내고 걷는것으로 회복하고 있다.

걷지 못하면 모유도 줄 수 없을 것 같다.

삼일째인 오늘도 모유가 나오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12년 만에 찾아온 나의 사랑스러운 딸내미에게 꼭 젖을 물리고 싶다.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이 사진으로 감사인사 보내드립니다.


2022.10.09

다솜 엄마이자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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