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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Nov 10. 2022

오늘 기분은 " 아주 좋다."이다.

별은 주변이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는 법.


아직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외출을 많이 하지 못해서 여전히 내게 바깥세상은 낯설기만 하다.


첫째가 목감기에 걸려서 우울하고 지치는 요즘이다. 다솜이가 태어난 지 삼칠일이 지나고, 한국에서 챙기는 아기 탄생 백일  대신,

화려한 떡을 이웃과 주변 지인들, 그리고 수고해주는 우리 다솜이의 내니 이모들에게 돌려서 베트남의 풍습을 따라 만 한 달을 챙기며 잘 지나고 났더니 첫째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픈 첫째에게 유산균, 홍삼, 칼슘. 철분부터 스트랩실과 현지 병원에서 비대면 상담으로 감기약까지 처방받아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이틀을 누워있으라 했다.

반찬 방에서 파는 각종 한국음식 이것저것을 배달시켜 고열량,고단백 음식을 하루 삼시 세 끼 챙겨 먹였더니, 첫째는 앓아누운 지 이틀 만에 벌떡 일어나 학교엘 갔다.  첫째는 동생의 삼칠일과 한 달 때까지 아프지 않아 주었고 또 금새 벌떡 일어나 학교를 가니 기특하면서도 동생만 신경 쓰느라 챙겨주지 못해 아픈가 싶어 미안한 마음도 교차를 한다.




오늘은 산부인과와 소아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어서 둘째와 내니 이모 그리고 나는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국인 남자분이 우리 둘째를 보며 흐뭇한 아빠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었지만 얼굴은 미국인인데 삼성 이재용 회장의 미소를 닮아서 계속 눈이 갔다.


둘째가 뭘 하기에 저렇게 보나 했더니,

내니에게 안겨 잠든 둘째가 배냇짓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채


울다가

웃다가

눈을 떴다가

희번덕 거리다가

조커 미소를 짓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가

인상을 쓰다가

끝내는 실제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집에서 자주 본모습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미국인 남자분은 아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다가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아기는 방금 나쁜 꿈을 꿨나 봐."


"인상 쓰는 게 꼭 눈이 부신 것 같아. 아기에게 선글라스가 필요해 보여."


"아기는 딸? 맞지? "


"자면서 웃는 게 무척 사랑스럽네. "


그러면서

자신도 곧 아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아이를 낳는 외국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서로 말이 잘 통했다.

 그와 나는 2군에 있는 미국 국제병원과 이곳을 놓고 어디를 다닐지 고민했었다는 이야기로 통했고, 집이 이 근처라는 사실로 더 친근해졌다.

미국인 남자를 보면서 나처럼 이방인으로서 느낄 이질감과 낯섦,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남편과 내가 같은 한국인이지만 그는 그와는 다른 국적인 베트남인 아내를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도 더 낯설고 외로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 부부와 우리 부부가 이 동네에서 우연이라도 마주친다면 반갑게 맞이하며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나와 같은 이방인.


그들과 점점 친해져 가는 것이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 될 것이다.




오늘 갔던 병원의 소아과에서는 둘째 출산 후 회복하는 입원병동에서 일하던 간호사를 만났다. 그 간호사와도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에 간호사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소아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 간호사 역시 내 얼굴을 기억해서 그녀는 나의 내니에게 말을 걸어 내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고, 둘째가 큰 모습을 보고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게 예뻐하는 간호사의 모습에 나는 그녀에게 호감이 다.






요즘 내니의 베트남어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영어로 서투르게 대화하고 있음에도 이해를 한다. 주로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둘째의 표정, 울음, 원하는 것 등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짧은 영어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들과의 대화가 전부이기에 나는 오히려 한국인들보다 베트남인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

 베트남인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지만 표정만 봐도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들과 우리의 정서는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낯선 이들과 만나 친해지는 일이 요즘 나의 가장 주된 일이다.

오늘은 뜻밖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와 다를 것 같지만 결국 같아지는 낯선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내가 만약 이곳에 오기 전부터 미리 알던 사람만 계속 만나왔더라면

이 많고 많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직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내일을 설레이게 한다.


 고개만 숙이고 살기에 세상은 무척 아름답다.


비록 내 현실이 어두울지라도

어둡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밝은 것들

눈을 둘 수 있는 게 아닐까.



2022.11.10

브런치 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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