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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글. 3

엄마를 부탁해.

by 햇살나무

서울역 지하철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시골서 도시로 자식네 사는곳을 가기위해 떠났던 엄마와 아빠.


성큼성큼 뒤도보지않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손을 놓친 엄마.




늘 그래왔던 무심함때문에 아버지는 엄마의 천천히 가자, 같이가자는 말을 또 외면하고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으러 아버지와 헤어진 그 지하철역을 뛰어갔지만 엄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도시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찾느라

자식들은 전단지를 돌리며 서로 엄마를 마중나가지 못한것을 탓했다.

그 동안에 엄마를 서운하게 만든 긴긴 과거의 끝자락에서 부터 걸린 서로의 잘못들을 탈탈 털어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엄마의 빈자리가 생겨서야 비로소 엄마의 흔적이 온 몸을 기억이란 파편처럼 찌르고 파묻힌다.


엄마는 치열히 살았다.



엄마의 손길이 닿는 것마다

죽을 것들도 모두 다 살려냈다.


길에서 주어온 강아지도

병아리들도

텃밭에 감자도 당근도

뭐든지 뭐든지

길러내던 엄마.


젊은여자와 바람이나서 집을 도망나간 아빠의

밥상 빈자리에도 어디가서 굶지말라고 정성스런 밥상까지도 차려낸 엄마였다.








도끼처럼 패인 이마주름을 주먹으로 가리고

틈만 나면 11월 겨울 찬바람에도

바깥평상에 누워잠을 자던 마누라.

뇌졸중이 지나갔지만 아파도 아프다 말도 않고

당신보다 먼저 죽으라던 마누라가

지금 내 옆에 없다.


심으면 심은대로

데려오면 데려온대로

다 죽어나가던 이 오랜 집터가

마누라가 온 뒤부터

감자도, 강아지도, 병아리도, 자식도 모두 살려내고 길러냈다.


그 마누라 생각에 집을 나갔다가 세 계절을 못 넘기고

집으로 돌아왔더랬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알아버린,

아니,

너무나 크게 느끼는 아버지는

그제서야 통탄의 울음을 휑한 마당 어디에다 대고 소리와 함께 내뱉는다.



" 지금 어디있느냔 말이오! "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허허벌판에서도

엄마는 엄마란 이름을 버릴 수 없었다.


쌀독에 바닥이 보이는 일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것에만 열중하고 기뻐했던

엄마는

이 생에서의 껍데기를 벗어나

무게없는 영혼이 되어서도 자식들을 위로하고 달랜다.


아빠도 남겨진 자식들도

자신들 삶을 살아가며 잃어버린 엄마를 찾지 못한 채

서로에게, 허공에

그리고 신에게 부탁한다.


엄마를.




엄마는 그런사람이다.

곡식도 동물도 사람도.

씨앗부터 살려내고 길러내는 그런 사람.


내 손이 거치는 모든 곳을

무엇이든

무성히 살려내고

자라내는 그런사람.

그런 엄마.






나도 그런 엄마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ㅡ신경숙 저,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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