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23살이었다. 세상도 무엇도 겁도 없던 시절,
대학전공을 포기하고 휴학을 했을 때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자 했었다.
그중에서 옷을 좋아하니 백화점이나 옷 매장에서 근무해보고 싶어서 채용공고가 뜬 회사를 찾아가 이력서를 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바로 면접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다음날 , 나는 ‘ 다 부쒀버리게쒀! 당장 취직하고 말거야’ 라는 열정으로 회사를 찾아갔다.
나는 면접장을 가서 그 회사의 점장을 처음 만났다. 점장의 첫인상은 부드러웠는데, 질문이 조금 까탈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여러 가지 질문에 모두 ‘네 자신있습니다!’를 외치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이 되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그 옷 가게는 대기업브랜드였다. 그리고 점장은 대기업 소속 직원이면서 매장에 파견 직원으로서 점장직을 동시에 겸하던 사람이었다. 아직 결혼은 안하고 암캐를 키웠다. 그 암캐를 종종 매장으로 데리고 왔고, 그 커다란 개가 매장을 점장 대신 순찰하듯 돌고 있었다.
직원들은 속삭였다. 점장이 결혼을 못해서 저 암캐를 키운다고..
우린 별 이야기들을 다 나눴다. 저 암캐와 잠자리를 하니 어쩌니,
처음 들어간 나에게 직원들은 점장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았다.
사회는 원래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지만 내가 겪어도 점장은 좀 이상했다
점장은 느끼하면서 남자직원과 여자직원을 대할 때 태도가 완전 달랐다.
남자직원에게는 말끝마다 욕지꺼리를 섞어서 하면서도 여직원은 미스 k, 미스 y, 미스j 이런식으로 부르면서 틈만 나면 자기 자리로 커피심부름을 시키고 갖다주면 윙크를 해대는 등, 아주 요즘 같았으면 미투때메 언감생심 그런 행동을 마음 놓고 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 우리가 막간을 이용해 손님들이 없는 틈을 타 옷걸이 뒤에 숨어서 옷을 진열하는 척 하며 땡땡이를 치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점장이 cctv로 쳐다보고 있었는 것처럼 나타나선 “지금 당장 전부다 사물함에 자기 핸드폰을 집어놓고 와!”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적막이 흐르면서 순간 놀란 직원들은 각자 자기 핸드폰을 들고 2층 락커실에 가서 핸드폰을 부리나케 집어넣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었다.
퇴근을 하려고 옷을 입으면서 핸드폰을 봤는데, 핸드폰에 익명으로 내게
“널 보면 머라이어캐리가 생각이 나, 아주 열정적인 멋진 여자.”
이런 문자가 온 것이다. 난 그 문자를 보고 친구들중에 누가 장난을 쳤으려니 하고 넘겼다.
그 다음날에도 핸드폰은 락커에 두고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핸드폰이 궁금해 열어보았더니, 또
“ 널 보면 내 첫사랑 생각이 나.”
이런 문자가 와있는 것이다.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런 문자가 오다니 누가 보낸 건지 궁금해지면서 머릿속에 이런 문자를 보낼 애들을 몇 명 생각해봤다. 평상시에 짖궂은 장난을 많이쳤던지라, 심심한 친구들이 보내는 건갑다, 하며 그냥 생각을 넘겼다.
그날 퇴근시간이 되자, 여직원 한명과 내가 집 방향이 같다면서 점장이 태워준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좋다 하고 차를 얻어 탔는데, 그 여직원은 나보다 먼저 입사한 선배직원이었고, 그 선배직원에게 점장이 먼저“ oo야. 오늘 포켓볼 어때? ”하길래 그 선배직원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니오, 전 사양하겠습니다. 전 집 근처에서 내릴께요. 정글씨 잘 가요.” 하면서 급하게 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곤 점장은 곧바로 나에게 “정글, 포켓볼 어때? ”라고 물어보길래, 사회생활 처음인 나는 점장의 제안을 거절하면 실례인게 될까봐 마지못해 포켓볼을 쳤다.
그날따라 포켓볼이 되게 잘 되는 것이다. 왕년에 놀았던 실력이 올라왔는지는 몰라도, 난 승부근성이 있어서, 그런 게임을 하면 즐겁게 하지 않고 상대방을 무조건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기질이 있다. 그래서 그날 포켓볼은 내가 이겼다. 점장은 졌는 게 아쉬웠는지 다음에 또 치자고 약 오르는 듯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근무 중 점심시간에 또 익명의 문자가 와 있는 것이다.
“어제 즐거웠다. 포켓볼, 이번엔 내가 이겨주지.”
라는 것이다.
그 때서야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이 점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점장이 너무나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점장은 끈덕지게 나한테 포켓볼을 이겨야 된다고, 근무가 다 끝나면 다른 직원들 몰래 오늘도 포켓볼, 내일도 포켓볼 계속 포켓볼 타령을 하는 것이다.
순간 점장이 무서워져, 선약이 있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더니 퇴근 후에 전화로 자기하고 포켓볼을 쳐주지 않으면 상사의 부름을 어기는 것으로 알고 퇴사처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심장이 쿵쾅 뛰기 시작했다. 전공포기하고 휴학한 것도 부모님께 눈치가 보여 얼른 구한 직장이라 성실히 다니며 돈이나 모으자 했는데, 막상 그렇게 짤린다고 생각되니 너무 억울한 것이다.
그래서 난 그 문자에 답장을 못하고 그 다음날 일을 하러 나가지 않고 침대에만 계속 누워있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나에게 왜 일을 하러 가지 않느냐고,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어보시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엄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말았다.
아르바이트 3개월 수습 후 정식직원으로 채용된다는 조건으로 3개월은 무조건 버티고 싶었는데 이렇게 돼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그런 회사는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이 일을 아빠와 의논하는 것이다.
그리곤 아빠가 그 점장을 찾아 갔다.
캐비넷에 있던 내 짐들도 챙길겸..
아빠가 그 점장을 찾아가서 이야기 했다고 한다.
“당신이 정녕 저녁에 포켓볼일로 우리딸을 짤랐소? 당신 이 회사 직원 겸 파견근무 나온거요? 나 당신 상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소!”
라고 했더니 그 점장이 깜짝 놀라면서 아빠께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가 젊은 점장이 아직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싶어 술을 한잔 사주고 세상사 이야기를 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점장이 나를 사랑 했다고 한다. 아빠는 그 이야기들을 나한테 해주는데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그 점장이 나한테 익명으로 문자를 보내온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빠는 아무말씀이 없으셨다.
그 이후에도 점장은 우리 집을 무턱대고 찾아왔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점장 얼굴 보는 게 무서웠다.
스물 셋이면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닌데, 난 어릴 적부터 내가 싫어도, 싫다는 표현을 잘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상대방에게 거절을 당하는 게 너무 두려웠다,
만약 내가 점장이 포켓볼을 치러 가자고 했을 때 내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었더라면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점장의 의사를 완곡히 거절한 여직원들은 하나같이 그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상상에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