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이별의 순간에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살아'하며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할 때의 슬픔. 그 이면에 있던 응급실-치료-퇴원-응급실-치료-퇴원의 기나긴 병고의 시간 속에서의 내가 할 수 있던 게 하나도 없던 나의 무력한 삶. 그 익숙함과의 이별도 준비된 것은 없었다.
직장에서 오다가다 만나며 안부를 전하며 인사정도는 하고 지내던 후배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한 동안 마음이 심란했다. 아직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떠난 그를 보면서, 산다는 게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 있었다. 매일 아침 눈뜨고, 졸린 눈 비비며 급하게 출근하고 직장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는 우리네 삶, 그 익숙함과 이별을 하고 싶지만. 그런 이별 또한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는 현실이 마음을 더더욱 무겁게 한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많이 받고 싶다.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래도, 그 일을 대하는 사람들 마다 태도는 천차만별. 누군가는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냐며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반대로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려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후자가 훨씬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사회 초년생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처음 할 때 다들 열심히 배우고 노력한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다 보면 '적당히'가 몸에 밴다. '그냥 하던 대로, 그냥 예전처럼'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적당히'가 당연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익숙함이 주눈 달콤함이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는 그런 익숙함과 이제는 이별을 하고 싶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를 위해 간단한 조식을 준비해 주는 아내. 약간의 과일, 빵, 우유 때로는 소박한 국과 반찬으로 공복 상태인 나의 빈속을 매일 채워준다. 그런 감사함이 잊은 채 너무 당연한 걸로 생각할 때가 있다. 그로 인해 아내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함을 잊지나 않았는지. 그런 류의 익숙함과는 이제 이별을 준비해야겠다.
쌀쌀한 날씨, 피곤한 육신을 탓하며,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하는 것을 가끔은 빼먹을 때가 있다. 온갖 궁색한 이유를 찾으며 운동을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거른 횟수가 늘어 날수록 한편으로는 게으름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늘어난 체중, 불안정한 인바디 숫자에 한숨만 나올 때가 있으니,
우리 일상에 수도 없이 많이 숨어 있는 '익숙함'이 우리를 너무 편하게 만든다.하지만 혹여나 그 '익숙함'으로 소중한 것을 잊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인생에서 그 익숙함과 이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