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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Aug 14. 2024

장항선, 조금 느리면 어때

철길 위 우리들의 설렘, 쉼이 곳

KTX가 개통된 지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KTX가 전국방방곡곡 연결되어 여행, 출장 등 생활 여러 면에서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새마을, 무궁화호로만 연결되는 곳도 많다. 그런데, 어쩌다 서울에라도 갈라치면, 굳이 낯선 서울시내를 차로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워, 영등포나 용산역에 내려 이동하기 편리하니 기차를 자주 이용하곤 한다.


특히, 내가 자주 이용하는 장항선 열차는 여전히 옛날 기차여행의 묘미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여전히 미스터리 한 게 있다. 삐그덕 삐그덕 철길 따라 흔들리는 열차, 기차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라고 하겠지만 요금 더 비싼 새마을호 보다 무궁화가 더 쾌적하다 보니 사람들은 바쁜 스케줄이 아니라면 굳이 시간 더 걸리고 요금 비싼 새마을호를 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또한 장항선에는 도고역 같이 역무원 없는 간이역에도 잠시 멈춘다. 이용자가 많지 않은 탓에 무인역이 되었지만 몇 안 되는 주민들과 온천관광객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장항선 열차에서 종종 바리바리 보자기로 쌓은 짐을 이고 지고, 기차에 오르는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분들의 공통점이 있다. 열차문 열고 가까스로 자리 찾아 앉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00야.. 이제 열차 탔다.  12시 40분이면 용산역 도착이랴"

"이.. 그려.. 이따 봐. 끊어!"


불같은 태양아래 밭에서 몇 날 며칠, 오직 자식들 생각하면서 그 힘든 일. 기꺼이 감내했을 그들.

할머니들의 보자기에는 청양고추, 가지, 오이, 옥수수가 삐죽삐죽 보인다. 자식네 집에 도착해서 열었을 때 끝없이 보물들이 나올 것이다.


한편, 건너편 좌석에 인상 좋아 보이는 중년 부부가 영상통화에 삼매경이다.

아마도, 귀여운 손주 손녀와 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손주들의 애교에 미소가 끊이질 않나 보다. 열차는 그렇게 가족, 연인을 이어주는 메신저가 되었다.


어쩌다 한번씩 타는 열차 안에는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물씬 난다. 오늘도 서울 자식들 집으로 가는 노인분들, 휴가를 마치고 귀대 중인 군인들, 대천해수욕장에서 여름휴가 마치고 귀경하는 여행객, 나처럼, 예약된 병원 진료를 위해서 서울에 가는 사람들, 휴가를 맞아 서울구경에 나선 외국인 근로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공간에 함께 한다.


무더위 속 시원한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만큼은 고단한 일상을 잠시 접어둘 수 있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KTX, ITX의 빠른 접근성과 효율만 고려되는 세상에서

가끔은 장항선 같은 옛날 교통수단이 사람들에게 느림이 주는 여유와 낭만이 때로는 위안이 될 때도 있다.


< 사진출처 : 픽사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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