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나는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날것인 '회'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너무 흔해서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까다로운 입맛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금은 육류보다 해산물, 특히 회, 구이를 더 좋아하니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고등학교를 멀리 공주에서 다니게 됐다.
그 덕에 여름방학이 되면, 공주는 물론 인근 논산, 조치원(지금의 세종) 출신 친구들은 바닷가에 위치했던 내 고향집에 자주 놀러 오곤 했다.
오션뷰를 자랑하던 고향집에서 며칠을 머무르는 동안, 아들과 그의 친구들의 삼시세끼 끼니를 담당해야 했던 부보님. 젊은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의 허기를 채우기에 위해 부보님들은 늘 우럭, 해삼, 오징어 등 서해바다에서 갓 공수해 온 해산물들로 주로 밥상을 차리곤 하셨다.
대부분 두메산골출신의 친구들은 그런 음식들에 대해서내 우려와는 달리어떤 부담감도 없이 몽땅 먹어치우곤 했다.태양이 작렬하는 낮 동안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다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면 얼음장같이차가운 지하수로 샤워를 하다 보면 입술이 퍼렇게 질려버렸다.오싹하게 샤워까지 마치게 될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허기가 몰려왔다.
물놀이를 하고 나면 예나 지금이나 라면이 국룰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에 자리 잡은 평상 위에서 낡은 양은 냄비에 인원수 + 2 개(총 7개)의 라면을 반으로 쪼개 넣어 부글부글 끊여 5개의 머리를 들이대가면서 정신없이 퍼먹곤 했다. 마치 강아지들 처럼...
건더기 다 건져 먹고 나면, 찬밥 몇 주걱 넣어 말아먹고 나야만 우리들의 즐거운 오찬은 그렇게 끝이 났다.
물놀이 뒤, 배도 부르겠다. 슬슬 졸음이 밀려올 때면 평상에 그대로 드러 누어 달콤한 오침에 빠졌다.
살살 불어오는 바닷바람덕에 삼복더위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꿀잠을 마치고 일어 날 때면 해는 뉘엿뉘엿해졌다.
어둠이 기어코 온 마을에 내릴 때 즈음
어머니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큰 플라스틱 바가지에 새하얀 길쭉 길쭉해 보이는 무언가를 가져오셨다. 언뜩보면 마치 뱀처럼 보이는 정체 모를 낯선 물체를 본 친구들의 표정은 굳어 버렸다.
그때 마당 한편에서 아버지는 쪼그려 앉아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계셨다. 시커먼 연기가 빠지고 빨갛게 불이 달궈질 무렵, 양쪽에 블록을 놓고 그 위에 석쇠를 올려놓으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정체 모를 하얀 물체를 석쇠에 올려놓으셨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기름기가 빠져 불에 떨어져 불길이 타오를 때 즈음 천일염 한 소쿰뿌려준후 몇 번 의 뒤집기를 한 뒤
"얘들아 이거 먹어봐! 여름에는 아나고 구이가 제철이다. 여름에 구이로 먹으면 담백하고 맛이 최고다"
그 새하얀 물체는 '아나고'였다.
아나고는 일본말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붕장어라고 한다. 여름이 제철이지만 사계절 내내 회, 탕, 구이 등으로 먹을 수 있다.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산골 출신 친구들은 어떤 거부감, 두려움도 없이 젓가락을 들이댄다.
맛을 본 친구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밝아진다. 나도 분위기에 이끌려 한 점 들어 입에 넣었다. 혀가 닿기도 전에 녹아 버린다.
어머니의 설명은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제야 처음 아나고의 맛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는 친구들과 눈치게임이다. 그때 우리들은 눈치 따위를 볼 시간이 없었다. 한 점이라도 더 먹기 위해 10대들의 젓가락질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뭘 먹어도 허기지던 시절, 그렇게 바가지 한 가득이었던 아나고를 다 먹어치운 우리들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
비닐 가득 돼지 목살을 가져다주셨다. 달궈진 석쇠 위에서 올려진 목살은 딱 세 번의 뒤집기를 거치고 난 뒤, 깻잎 한 장씩 싸서 먹다 보면 아무리 허기진 고등학생들이라도 배가 안부를 수 없었다.
그렇게 배불리 먹은 나와 친구들은 세상 부러울 것 없었다.
여름 밤하늘에 별이 하나씩 반짝일 무렵, 친구 중 유일하게 기타를 칠 줄 알았던 동식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노래도 잘 불렀던 그 친구의 낮은 저음이 울려 퍼질 때, 우리들의 떼창은 시작되곤 했다.
입맛 가출한 여름날 가끔씩 떠오르던 그 시절 맛과 추억이 생각날 때가 있다.이 계절에 유일하게 생각난 맛, 오랜만에 맛보는 그 맛에 추억 한 쌈을 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