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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바람아래
Sep 09. 2024
포도귀신
어쩌면 그 시절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요일 오후, 일상대로 아내와 마트에 들러 장을 보러 갔다.
명절 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날이었다.
과일 코너에서 잠시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7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는 거봉포도 앞에서 주의사람들의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신 비닐로 포장된 상자 속 거봉포도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한 남성은 그 옆에 서서 휴대폰을 보느라 아이를 돌보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행동을 말리기보다는, 그 아이의 행동에 오래전 추억이 소환되었다.
그때 내 나이도 마트의 그 아이와 비슷한 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형의 가을 운동회가 있던 날이었다. 엄마 손에 이끌려 형이 다니던 학교에 갔다.
학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스피커에서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 방송과 음악이 흘러나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운동장에서는 형을 비롯한 학생들은 청군백군으로 나뉘어 열심히 경기를 하고, 그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멀리 잔디밭 또는 천막 그늘아래에 자리를 잡고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를 외치며 목이 터져라 자녀가 속한 편을 응하기 바빴다.
여느 부모님들처럼 형을 응원을 하는 어머니와는 달리, 나는 형들의 경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학교 울타리 주변으로 수 없이 펼쳐진 상인들의 물건에 관심이 끌려 엄마도 잊은 채 평소 보기 어려운 각종 장난감부터 쫀드기, 번데기, 과일 등의 먹을 것들에 홀려 정신이 팔렸다.
그러다,
어느 과일장수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마치 마트의 그 아이처럼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끝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배짱 좋게 포도 한 알 한 알씩 떼어먹었다.
그렇게 한 알씩 떼어먹다 보니 더 이상 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멀리서 어머니가 나를 찾아 헤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주인은 미소와 함께 '애기가, 여기서 포도 한 알씩 떼어먹고 있는 게 귀여워서 그냥 나뒀습니다'하며 어머니와 인사를 했다. 그의 말에 어머니는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걸 어쩌죠?' 하며 사과를 했다.
'괜찮다'고하는 과일장수의 말에도 어머니는 '그래도 이건 아니 것 같으니, 아이가 먹은 거는 값을 지불하겠습니다'하면서 돈을 지불하셨다.
가을운동회, 그날은 그 어떤 시고를 쳐도 면책이 되는 날이기도 했고, 평소 갖고 싶은 장난감 하나 얻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다행히
어머니로부터
어떤
꾸중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
뒤로
나를
'우리 집
포도귀신'
이라고
불렀다.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다.
시크름하고
달달한
맛도
일품이고,
몇 알
먹고
나면
기운이
나기에
여름철
지칠 때 최고의 자연 비타민 공급원이라
즐겨 먹는다. 거봉포도는 한 여름 보다, 찬 바람나는 가을 이때 즈음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거봉포도 한 상자면 이번 추석도 거뜬하게 보낼듯.
마트에서 우연찮게 본 그 아이의 모습에서 오래전 내 모습을 볼 줄이야.
*대문사진 Pixabay 에서 내려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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