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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제대로 한번 놀아 보고 싶은데...

by 바람아래

퇴직을 앞둔 중년 남성 둘이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함께한다.

소주 몇 잔을 연신 기울이다가 한 친구가 먼저 정적을 깬다.


"친구!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

"뭐 그냥저냥"

"당뇨는 좀 어때?"

"그냥 관리하고 지내"

"심장은 괜찮고?"

"그냥 그래"

"그런데 술 그렇게 마셔도 돼?

"그래서 요잔 까지만 할게"

"그렇게 해"


그들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한 참 동안 아무 대화 없이 한 사람은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고 또 다른 친구는 얼큰한 매운탕 국물을 연신 떠먹는다.




퇴직을 목전에 둔 직장 선배들의 대화다.

소위 말하는 '잘 나갈 때'의 그들은 모습은 세월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직원들은 힘들었지만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조직에서 나름 인정받던 분들이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무엇이 나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3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모르는 퇴직 후 삶에 대하여

한 분은 이것저것 자격증도 따고 나름 준비를 한 듯하고 한 분은 전혀 준비가 안된 듯하다.

'시간은 남아도는데 뭘 하며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분의 말을 듣고 나니 내 마음이 오히려 더 막막하다.


그들 세대는 가정보다는 조직의 일이 우선이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밤낮으로 일을 했다. 그 시절 조직에서는 그런 인재상을 요구했기에 그들 또한 거부감 없이 세상이 요구하던 대로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니 퇴직 후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을 한 적도 없다.


퇴직을 준비 못한 그분의 말 중에서 가장 짠하게 들린 것은 '노는 게 힘들다'라는 말이었다. 새로운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진짜 제대로 한번 잘 놀아 보고 싶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떻게 놀아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그의 진심이 전해진다. 그의 말대로 그냥 놀면 되겠지 싶지만 막상 놀려면 쉽지 않다는 걸 한 번씩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더욱이 출근 없는 삶 속에서 논다는 것은 필요한 게 많다. 돈, 같이 놀아줄 친구, 놀거리 등등.

평생 '노는 것'이라고 해봐야 직장 동료 또는 가까운 친구들과 술 마시는 게 전부였던 그들에게 이런 상황은 적잖이 낯설 수밖에 없다.


우선 먼저 해야 할 것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코 타인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식당에서 혼밥을 한다거나, 영화, 커피숍, 등산, 여행 등을 혼자 하는데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가 되면 좋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세월이 갈수록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혼자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게 될 것이기에 혼자 남는 것에 대해 미리 익숙해지는 것도 가지 삶의 지혜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혼자 하는 것부터 여럿이 함께 하는 것까지 선택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의 걱정은 덜고 삶은 덜 지루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이 글은 오랜만에 제주에 와서 작성 중이다.

제주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에 혼자여행을 오는 사람을 자주보곤 한다. 요 며칠 동안 혼자 하는 여행의 자유와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지나쳤다. 그들 대부분의 모습은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발길 닿는 곳에서 순간순간들을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보였다.


또한,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때 곁에 같이 할 누군가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일정을 맞추려 해 봐도 그게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겨우 일정을 맞췄더라도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날씨가 변해서 일정을 계획대로 못할 때도 많다. 그럴 때 밀려오는 아쉬움과 실망감이 상당할 때가 있다.


그러니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의 마음'이다. 퇴직을 했던 현직에 있든 중요한 건 '나'다. 혼자 외롭다고 느낄 때 누군가의 전화만 기다리며 휴대폰만 만지작거릴게 아니라, 먼저 전화든 메시지든 연락을 해야 한다.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누구도 나를 향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비슷한 성향의 친구나 이웃에게 함께 할 것을 먼저 제안할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갑자기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여유시간이 생겼을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나 무엇인가를 하고 싶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이러니하지만 일단 뭐든 해야 한다. 전화를 걸든, 밖에 나가든, 책일 보든, 영화를 보든. Just do it!


건강을 위해서 간단한 등산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밖의 또 다른 삶의 재미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브런치 작가'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는 즐거움 느껴본다거나 E성향이라면 운동이나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결국 '새로운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가깝게 지내는 중소기업 사장님의 사례로 끝을 맺고 싶다.

한 지역에서 나름 중소기업으로 꽤 큰 규모로 건강기능식품회사를 일궈오신 분의 이야기다.

현재 연세가 60대 중반 정 된 되셨다. 회사도 성장해서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약 20여 년 동안 그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 사장님의 고생을 잘 알고 있다. 그러던 그분이 어느 날 갑자기 페이스북에 본인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스타일이 완전히 바뀐 상태였다. 일단 공장 작업복이 아닌 깔끔한 면바지에 감각 있어 보이는 로퍼를 신고, 화려한 셔츠 그리고 스트라이프 재킷을 걸쳤다. 머리는 헤어에센스를 과하지 않게 발라 스타일링을 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페북에 자주 바뀌는 그의 모습이 계속 올라왔다. 그때 드는 생각은 '이 사장님 갑자기 왜 이러시지 혹시 그거(바람) 아냐'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그 사장님을 만나는 날이 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사장님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왜요? 나한테 무슨 일이 있어 보여요?"

"사장님 페북에도 그렇고 지금 모습도 그렇고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셨어요! 그래서 뭔가 싶었습니다"

"아~, 그러셨구만. 에이 별거 아니고 나 얼마 전부터 시니어모델 활동을 시작했어요"

"아이고,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뭔 일(?)이 있나 생각했어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서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나도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한 동안 서울로 교육도 받으러 다니고 이렇게 해보니까, 사는 게 달라졌어요. 스타일 바뀌고 회사제품 홍보할 때 바뀐 모습으로 하니까. 반응도 좋고. 특히 해외바이어들도 좋아해 줘서 더 힘이 나요"

"정말 좋아 보이십니다. 멋지십니다"


[대문사진 출처 : Fre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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