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by 바람아래

잠깐 병원에 다녀온 시간을 제외하고는 토요일 온종일 시체처럼 잠만 자다가 서늘한 가을이 내려앉는

밤이 되어서야 미동을 하기 시작했다.


기운도 입맛도 없었는데 저녁을 간단히 대충 때우고 난 뒤에야 몸에 생기가 조금 돌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하루 종일 묵은 마음을 떨쳐내고픈 마음에 동네 하천가를 거닐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피부에 닿자 상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EBS라디오를 들으며 걷다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직장 동료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분이다. '예술을' 매개로 알게 된 분으로 언제 어디서 만나든 우리들의 대화의 주제는 늘 지역 예술이다.


주말 밤이지만 산책을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몇 번 울리고는 살짝 취기가 든 그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린다.


"아~ 팀장님! 요즘 많이 힘들었는데 먼저 전화를 주셨네요. 죄송하기도 하고 너무 고마워요"


이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이 뭉클해진다.

대화도 하기도 전인데 대뜸 고맙다고 말하는 그다.


"뭐가 그리 힘드세요?"

"현장에서 있다가 사무실에서 서류 작업만 하다 보니 갑갑한 게 너무 많아요. 팀장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것 같아요!"

"지역에서 예술 단체를 이끌며 현장에서 단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다가 사무실에 계시려니 답답하실 거예요"

"맞아요. 예술에 대한 이해도 없고, 의지도 애착도 없는 사람들과 일하려니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그 자리에 어렵게 가셨고, 00님만 바라보는 젊은 단원들 생각하며 잘 버티세요. 그 친구들의 큰 형님이시잖아요. 반드시 빛이 나는 순간이 올 겁니다"

"팀장님, 목소리 들으니까. 다시 힘을 내야겠어요! 여기 언제 놀러 오실 겁니까?"

"저도 마음은 늘 가고 싶어요. 아무튼 저도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날 가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그와 그가 몸담은 예술단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동안 그들과 만들었던 여정들이 파노라마 영상의 각 장면들이 쓱 지나가는 듯했다.


이분처럼 생각하지도 못한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가족, 친구, 동료, 지인... 물론 아무나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가장 힘들 때 힘이 되어주었거나, 함께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거나 또는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깜짝 전화 한 통, 누군가에게 힘이 될 때도 있다. 반대로 나 또한 누군가로부터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을 받고 힘이 날 때가 있다.


그게 전화 한 통의 힘이다. 단순히 반가운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소리로 전달되는 마음과 마음의 온기' 즉 '공감'이다. 지금 문득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주저 대신 전화번호를 누를 용기를 내어보자. 그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해 줄 뿐만 아니라 '반가움'은 덤이 될 것이다.


시간을 숙성시킨 가을비가 멈추고 계절이 익어가는 주말 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되어주는 전화기 버튼의 기계음이 그리운 밤의 서정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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