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장님
군대를 제대하고 한 참 방황하던 나에게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해 주신 사장님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사장님과 베스타(VAN)에 배달할 물품을 가득 싫고 배달을 가던 길이었다. 차 창을 내리고 달리던 차 안으로 불어 온 찬 바람 대신 시원한 바람은 20대 청년의 갑갑했던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마침 그때 라디오 스피커에서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이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사장님은 혼자 흥얼거리며 그 노래를 따라 하다가
"O주임! 아, 벌써 가을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가슴이 미어져! 이 노래만 들으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어쩌면 좋아!"
사장님의 말에 '누구나 가슴속 한편에 잊지 못할 추억 하나쯤은 숨겨 놓고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도 벌써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내가 그때의 사장님 나이가 되었다. 매년 가을 이 맘 때면 그 사장님이 생각나곤 한다.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 때 가장 먼저 손 내밀어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 사모님 또한 훌륭하신 인품으로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셨던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에 대한 미처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 이 모든 감정과 에피소드들이 섞여 가을 추억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그런 30년 전 일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대화가 있기까지 나는 그 노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그 노래가 '패티김'이라는 전설의 가수가 부른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뒤로는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옛 추억과 함께 그 두 분이 떠오르곤 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 그 사업장을 찾아가 봤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언제 폐업을 했는지 알 수 있는 흔적은 간데없고 대신 얼마나 오랫동안 쌓여있을지 모를 빛바랜 우편물만 가득했다. 나는 아무 인기척 없는 문 앞에서 '사장님과 사모님 덕분에 저는 이렇게 멋지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보고 싶습니다'를 마음속에 새기고 발길을 돌렸다. 방황하던 젊은 날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인생선배로서 여러모로 도와주신 그분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 한번 못했다. 그래서 늘 아쉽다. 당장이라도 뵐 수 있다면 달려가서 큰절이라도 한번 하고 싶은데...
"임사장님, 부디 사모님과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