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아래 Feb 04. 2023

아! 인도네시아, 눈물의 결실 A4 400매

눈물겨운 지방자치단체의 국제교류 숨은 이야기  

대부분의 지자체가 국제교류, 국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지방자치단체와 상호방문 등을 통해 교류 관계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 이유는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수출 유망시장 확보, 외자유치, 국제행사 및 문화교류, ODA(공적원조) 등 다양하다.       


그동안은 역사, 동맹, 경제협력 등의 이유로 중국, 일본, 미국 등의 국가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남아, 남미, 중동, 중앙아시아 등으로 교류의 폭을 넓히려는 활동이 활발하다. 각 지자체의 상황에 따라 그 대상국은 각각 다르기도 하고 어떤 곳은 중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그런 상대국 지자체와 교류를 처음 시작하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게 늘 고민이고 담당자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국제교류의 시작은 대부분 대상지역에 대한 철저한 분석, 우리 지역과 어떤 분야, 어떤 방식으로 교류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로 누구와 어떻게 연락할까 가 첫 장벽이다. 이럴 때 대부분 현지 공관을 통해 알아보거나, 현지에 있는 출향 인사나 출향 기업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접근한다.


어찌어찌해서 담당자와 연락이 닿는다 해도 그다음 난관은 우리 지역과 왜 교류를 해야 되는지 그 담당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국제관계는 ‘상대성’이라는 게 있어서 우리가 아무리 좋다고 한다 한들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 다면 모든 것이 공염불이 되는 것이 일쑤다.      


이때 필요한 것이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Needs 충족, 그리고 진정성과 우리의 지속적인 실행의지를 보여야 한다.     




0000도 역시 전통적으로 중국, 일본 중심의 국제협력관계를 해오던 중 2017년부터 ASEAN 회원국과 국제협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그때 첫 번째 목표로 인도네시아 S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중국 쓰촨의 성도 청뚜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개최된 국제행사에서 우연히 S 지역개발부장과 그 비서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비서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S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제안을 전달하자 그 비서관은 밝은 표정으로 “Sounds good”이라고 화답해 줬다. 곧이어 그는 바로 담당 국장을 현장에서 소개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반응해 줬다. 회의가 끝날 무렵 우리는 Facebook 계정을 공유하고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귀국 후에도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지역 국제교류 담당자의 연락처를 결국 받았다. 물론 그 담당자에게 우리의 제안과 의지는 이미 다 설명된 뒤였다.      


이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듯하였으나, 세상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해 11월이 되어서 그 당시 팀장과 나, 단 둘이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우리의 계획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그를 자카르타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당일 약속된 17:30 시간이 다가오면서 슬슬 불안감이 엄습했다. 전화도 메시지도 연락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순간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머지않아 그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자카르타행 기차를 타고 오던 중, 기차고장으로 도착이 지연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로 30분이 지나고, 또 30분이 지나 결국 2시간이 지난 7시 30분에 도착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 우리는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우리의 의지를 전달했다. 그녀 또한 저녁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되돌아갈 기차 시간에 맞춰 자리를 떴다.      


여기서 끝이라면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 공항으로 그녀는 자카르타에서 평상시 3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려고 갔으나 결국 기차는 놓치고 버스(일명 '나라시' 버스)를 탔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들의 대화 메시지는 밤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그녀 또한 고향에 우여곡절 끝에 현지시간으로 새벽 4시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가 알던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한가하다, 느리다)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사실 당일 약속되었던 최초의 담당자는 아니었는데, 내부 사정상 일명 ‘대타’로 나오게 되었던 상황이었고, 오토바이-기차-오토바이-버스-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만나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흔히 현지인들은 그럴 경우 대체로 안 오는 게 다반사인데, 그녀는 끝까지 약속을 지킴으로써 나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 후, 각자 사무실에 복귀하고, 그다음 해 봄, 나는 약속대로 그녀를 우리 지역으로 초청해서 우리의 제안 내용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방문 이후로는 나와 그 담당자, 0000와 S간 신뢰는 한층 두터워졌다.


그렇게 양측 간에 교류를 차근차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뭔가 큰일(?)을 해보려 했으나, 2020년 팬데믹을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나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렵게 만든 이 좋은 기회를 온라인으로 라도 유지하려고 총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2021년 11월 ‘0000- S 우호교류협정’을 체결했다. 이 역시 팬데믹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협정이 최종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양측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서로를 존중하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협정체결이 끝난 날 저녁, 그동안의 노력과 그 친구와의 협력사항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했고, 약간의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그 친구와 주고받은 영문 메시지(Whatsapp)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출력을 해본 결과 무려 A4 400페이지가량 되었다. 거기에 이메일까지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동안 서로 간에 얼마나 많은 밀당(?)을 했는지, 때로는 어떤 순간에 서로 기분 나빠했는지 그리고 담당자로서 얼마나 책임감 있게 일을 추진하려 했는지 모든 것이 거기에 묻어났다.   

   

지금도 그 친구와는 별 이슈가 없더라도 아직도 거의 매일 안부를 묻고 지내고 있다.      

끊임없는 관심, 언행일치를 통한 신뢰구축이 오늘의 양측 관계형성의 핵심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은 결국 주민들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전국의 국제교류 담당자들은 그저 주민들이 쉽게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아드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제 그 징검다리를 주민들은 안전하게 건너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도 한때 세계 많은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역사가 있다. 이제는 주민들이 함께 세계 시민으로서 역할을 함께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때 X세대였던 74년생 호랑이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