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아래 Mar 21. 2023

03 내 인생 수학과 작별을 고하다

그 대신 영어에 빠지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담당하셨다.

나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주신 선생님 덕에 영어 수업은 늘 재미있었고 나의 최애 과목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당연히 영어 성적은 괜찮았다. 학생 때 관심 과목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당연히 성적도 좋게 나오는 걸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게 1학년을 무사히 넘기고 2학년이 되면서, 영어와 수학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영어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어서 재미있게 공부를 했는데, 수학은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도식으로 된 공식을 외워야 하고,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데 그 자체가 나한테는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게다가, 수학 선생님들은 왜 이렇게 무서웠던지... 그렇게 수학이란 과목은 점차 나에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런 과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 당시 나는 나름대로 수학은 어떻게든 해보려는 시도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전교 1등 하는 친구에게 봉봉(캔 음료)을 사줘 가며 전속으로 과외 아닌 과외를 받아보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수학 선생님을 찾아가 따로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학은 나와 동반자가 될 수 없는 존재'라고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입가경! 수학은 점점 나에게 늘 절망감을 안겨줬다. 요즘처럼 유튜브나 수학 1타 강사(예를 들자면 ‘일타 스캔들의 최치열’ 캐릭터)의 인강이 있었더라면 어쩌면 나도 ‘적어도 수포자는 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수학과 과감히 작별을 고하고, 대신 좋아하는 영어에 전념하기로 했다. 단어는 물론, 문법을 마스터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당시 영어 과목을 맡았던 석 선생님께 쉬는 시간마다 달려가서 해석이 안 되는 문제, 이해 안 되는 문법을 질기게 따져 물어보곤 했다.

         

그런 노력으로 가끔 보는 단어 쪽지시험, 중간/기말고사 성적은 꾀나 잘 나왔다. 영어 선생님은 그런 날 기특해하신 반면, 수학 선생님은 안쓰러워하셨다. '과목 편식'이 심했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싶다.

     

그 시절 나는 용돈이 생기면, 읍내에서 친구 원일이네가 운영하는 책방 겸 서점으로 달려가 맨투맨(Man to Man) 또는 성문종합영어 시리즈를 사거나,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를 사곤 했다. 링으로 된 단어장도 많이 사서 단어를 오가며 많이 외웠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영어 공부에 매진을 했다.

     

인생 살다 보니, 내가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다면 과감하게 하나는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는 교훈을 얻긴 했는데, 그 시절 내 선택이 잘 된 건지 잘 못된 건지 아직까지 모르겠다. 다만, 후회는 없으니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인생 알 수 없다고 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해 보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일찌감치 수학과 헤어진 후 영어와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 친구는 수학 시간마다 엄청 두꺼운 TOFEL 책을, 나는 Voca 책을 갖다 놓고 열심히 영단어를 외웠다.

     

그런 나와 내 친구의 모습을 보던 수학 선생님은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 싶다. 그 친구는 결국 교대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다행히 초등 교사가 되었으니,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는 덜 받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어찌 되었든 그 당시 나에게 어떻게든 수학을 가르쳐 주시려고 고생하셨던 수학 선생님들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 그리고 죄송하다는 인사도 함께 드리고 싶다.


https://brunch.co.kr/@aea52d57bd23459/50


매거진의 이전글 02 금발의 그녀, 온 마을을 뒤흔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