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아래 Apr 12. 2023

'수습'을 뗀 신입사원에게

인생의 아름다운 첫걸음을 축하합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8시 전에 출근을 해서 루틴대로, 국제회의 영어책과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읽고 있었다.  


옆 팀 막내 직원 J도 출근을 하면서 늘 하던 대로 반갑게 아침인사를 한다. 잠시 후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 책상 위에 팩음료와 예쁜 리본으로 포장된 비스킷이 하나씩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비스킷 상자를 열어보니 메모 한 장이 쓰여있었다. 수습사원이었던 J가 '수습'을 떼는 날이라, 음료와 비스킷을 직원들과 나눈 것이었다. 순간 돌이켜보니, 예전에는 승진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 관행처럼 떡 돌리기를 했었다. 물론 나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마저도 인습으로 여기는 풍조, 또는 직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서 그런 것을 안 한 지 오래됐다. 직원들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좋은 날, 부담이 안 되는 선에서 이런 것도 좋을 듯 하지만, 요즘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먼저 하자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자발적으로 할 사람 하면 되고 안 할 사람 안 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의 특성으로 보면 뭔가를 받으면 일반적으로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는 심적부담을 갖게 마련이다.


나도 오늘 아침 후배의 이런 모습에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 잠시 생각을 해봤다.

"나중에 커피라도 사줄까", 아니면 "점심이 좋을까", "이런 거 사준다면 '꼰대'소리를 듣지나 않을까"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먹기 전에 그 후배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그냥 맛있게 먹자'였다. 그리고 생활하면서 지치고 힘들어 보일 때, 본인이 원한다면 업무와 관련된 족보 파일과 업무 노하우를 공유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전제는 '후배가 원한다면'이다.)


요즘, 나도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한 아침이었는데 후배의 선물로 옛날 생각도 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비스킷의 달달 함이 일로 건조해진 마음을 녹여준다.


나도 '수습'이라는 두 글자를 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세월이 야속하게 빨리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후배에게 해줄 것은 '이제는 더 멋지고 당당한 후배로 성장하기를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것'뿐이다.


단, '수습'이라는 단 두 글자를 뗀다는 의미는, 보이지는 않지만 대신 '책임'이라는 것이 뒤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그래도, 후배님! 좌절금지! Chin up!


매거진의 이전글 또 산불이 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