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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May 28. 2023

드디어 지킨 '오래된 약속'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문화의 혼 '전통예술단 혼'

일본에 수 차례 갔지만 일본인들의 영산인 후지산을 제대로 본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번만은 달랐다. 시즈오카에 도착한 날 날씨가 쾌청하고 하늘은 맑디 맑았다. 멀리 후지산이 아주 가깝게 깨끗하게 보였다.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기운이 돌았다. 그렇게 좋은 예감을 갖고 지난 5개월 동안 매진했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곳에서 일본 현대무용의 거장 '사토노리코' 선생님이 이끌고 있는 사토노리코 무용단(이하 '사토 무용단')과 서천군립전통예술단(전통예술단 혼, 이하 '혼')의 합동 공연을 개최했다. 평일 이른 시간의 공연이라 관객이 많지 않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사토노리코,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무용의 거장, 전설의 무용수 고 최승희와 동문수학한 사이라고 함)


공연은 사토 무용단이 준비한 우리 노래 '뱃노래'에 맞춘 창작무용으로 시작됐다.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춤사위에 조명과 음악을 더하니 공연의 품격이 달랐다.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무용 거장의 작품답게 무용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사토노리코무용단 공연 모습

뒤 이어 혼의 공연이 관객석에서부터 상쇠의 샤우팅과 함께  공연장을 깨울 듯, 가늘지만 경쾌한  태평소 소리로 서막을 열었다. 흥겨운 사물놀이 한마당으로 시작된 공연은 이미 앞서 공연한 사토 무용단의 정적인 것과 반대로 역동적으로 대비되었다.


곧이어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우아한 춤사위를 뽐낸 여성 무용수들의 손가락 마디마디의 움직임, 손짓 하나하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와 눈동자의 움직임에 생기가 돌았다. 그들의 몸짓, 손짓, 미소로 관객과 하나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들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따라 사람들의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그 순간  축제를 즐기는 사람만이 영웅이 될 것 같았다. 결국 그 역사적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는 시나브로 영웅이 되어 있었다.


잠시 후 12발 상모 돌리기를 하자 공연장은 이미 열기와 환희로 가득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연신 감탄사가 쏟아졌다.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지면서 공연이 절정에 다다르자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 뭉클한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관객들의 그들의 공연에 감탄을 했겠지만, 나는 그것과는 별개로 복합적인 감정이 복받쳤다.

'무용'이라는 비언어( Non-verbal Perpormance)적 주제를 위해 사토 무용단은 정적인 전형적인 현대무용을, 반면 혼은 동적인 전통무용으로 대비되게 공연을 펼쳤다. 이렇게 양 예술단의 완벽한 조화(현대 vs 전통, 정적 vs 동적)로 하여금 관객들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년 전이다. 우연히 알게 된 혼이 해외 예술단체와 예술교류를 하고 싶어 했다. 내가 그들의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은 오직 그분들의 열정, 지역문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 예술단체와 주선을 해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것은 그들과의 약속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1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러는 사이 혼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UAE, 호주, 몽골 등에서 공연을 하는 등 실력과 경험을 키워나갔다. 마침내 2018년 한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사토 무용단과 혼이 민간예술단으로서 예술교류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교류를 하는 듯했으나 2019년 8월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 경제제재, 2020년 불어닥친 코로나 19 등으로 정치적, 환경적으로 이들 간의 교류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공연을 12년 전에 약속했던 대로 일본 시즈오카에서 그들의 협력 파트너인 사토 무용단과 함께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이다. 그들의 수준 높은 공연덕에 기립 박수를 받아서 기쁘기도 하지만 그동안 나와 혼 그리고 일본 측 파트너들의 노력이 없이는 이날의 감동은 있을 수 없기에 내 감정은 복잡했다.


12년의 긴 시간 동안 혼의 단장님, 감독님과 나눈 수많은 이야기, 시련, 아픔을 함께하며 이 순간을 위해 다짐하고 노력했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공연이 다 끝나고 난 뒤, 일본 측 담당자로서 12년의 시간을 함께한 K씨도 하염없는 눈문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음날 그를 만나 그에게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보니 놀랍게도 나와 똑같은 감정이었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 이런 것이 '문화'의 힘이 아닐까. 그날 500여 명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의 의미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문화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인간의 삶을 조금 더 윤기 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날의 감동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12년 전의 오래된 약속, 늦었지만 결국 지키게 되어 그 기쁨 이렇게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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