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레시피 #3. 두근두근 콥핑 샐러드

오늘의 재료 : 조급함 2개, 불안 1/2개, 희망 1티스푼

by 허정문

레시피 한마디 : 조급함을 잘게 쪼개 열정으로 만들기


게으름뱅이의 삶은 매우 바쁘다. 자세히 말하자면, 야심 있는 게으름뱅이의 삶이 그렇다. 미루기 습관이 있는 주제에 꿈은 크고, 바라는 것도 많은 나는 늘 바쁜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 내가 배우고 익힌 심리학 스킬의 60% 정도는 이 조급한 마음을 정상 범주로 끌어내리는 데 사용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야심찬 게으름뱅들은 마치 게임처럼 슈퍼 피버 타임(Super Fever Time)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서 모든 일을 적당히 괜찮은 퀄리티로 끝내 버리는 시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 시간의 나와 소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엄청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 일수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현실에 막 안주해버리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생득적 후천적 선호가 있는 나는 재미삼아 신년운세 보기를 즐긴다. 온갖 나쁜 소리는 다 무의식 저편에 봉인해두고, 좋은 말만 골라내 기억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올해 뇌리를 관통한 한마디.


“정문씨는 하늘에서 끊임없이 돈이 내려오는 팔자예요.”


많이 벌진 못해도 배 곪지는 않는 기묘한 운명의 흐름을 느끼던 찰나에, 이런 확증편향을 자극하는 말이라니. 심리학자로서 놓칠 수 없지. 역시 유사과학은 사이언스라며, 내면의 게으름뱅이가 또 1센티미터 정도 성장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충분히 만족스러운가 하면,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세상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대충 속성으로 바싹 만든 나의 성과물 같은 건 너무 미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이지. 가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 야심과 나 사이의 공간에서 자글자글한 주파수가 흘러나온다. 그게 바로 조급함이다.


마이크로 진동파가 먼지를 털어내듯, 조급함은 창의성과 자신감, 만족감을 흩어놓는다. 한때는 뭉쳐지지 않는 그 조각난 마음들을 예쁜 원래의 모양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마치 옥수수알같이 산산히 흩어진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춰보려는 것처럼.


하지만 알알이 분해된 옥수수는 다시 원래 줄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냥 맛있게 깍둑 썬 재료들과 섞어서 콥핑 샐러드로 즐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조급함이 생각들을 잘게 나누고, 맥락을 잃게 할 정도로 초조함을 유발할 땐 그냥 생각들을 그러모아 즐겨보자.


생각의 내용을 잘게 정리하는 건 언제나 도움이 된다. 생각은 다양한 감각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근원이다. 다만 조급함에서 비롯된 생각으로 만들어진 경험들은 깊이가 있진 않고 일시적이거나 피상적이다. 그런 경험들은 너무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다. 자잘한 그 조각들을 모아 맛있게 즐기면 그만이다.


오늘의 생각 조각은 '이제 좀 마음 잡고 살아야 하지 않니?'였다. 꿈을 따라서 하고 싶은데로 베짱이처럼 살아온 나날들의 아쉬움이 한 걸음 툭 내딛을 힘을 준다. 자잘한 아이디어들이 마치 한그릇에 담긴 콥핑 샐러드처럼 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이런 조급한 내적 경험을 갑자기 차분하게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조화가 깨지기 쉽다. 빠르게 툭 만들어 먹기엔 새콤한 불안의 맛이 잘 어울린다. 불안의 액기스를 쭉 짜서 살짝 섞어주면 흥분감과 사소한 걱정들이 생겨난다. 이때 설탕처럼 단맛을 내는 약간의 희망을 첨가하면, 급한 대로 즐기는 멋진 샐러드가 완성된다.


급한 상황에서 생각도 즐기고, 감정도 즐기고,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야심 있는 게으른 프로젝트 하나가 뚝딱 완성된다. 가끔은 이런 맛도 좋지 않을까? 끓이고 튀기고 할 시간도 없을 땐, “오늘은 참 조급하구만.” 하고 말하며, 조급함 한 접시의 여러 감각을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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