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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만 일하면 나라가 망한다구요?

by Neutron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1999년까지만 해도 주 6일제였다. 토요일은 오전 근무 뿐이었지만 어쨌든 회사에 출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격주 토요일 휴무의 시대가 왔고 급기야 주 5일 시대가 도래했다. 한 주에 이틀을 쉬다니, 직장인들이 꿈에 그리던 제도였지만 제대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특근, 야근은 계속되었고 실제로 주말을 제대로 쉬는 날은 드물었다. 8시 출근, 8~9시 퇴근. 하루 12시간 회사에 붙어있어야 했고 이를 주간으로 계산하면 60시간 넘게 일했다. 월급을 받아도 돈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정부에 의해 주 40시간이 강제되었고 이를 어기고 특별한 사유 없이 야근, 특근을 시키면 회사에 불이익을 주도록 제도로 못을 박았다. 기업들의 광고를 유치해야 하는 언론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하여 연일 비판의 글을 쏟아냈다. 저성장 늪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에 노동시간 단축은 치명적인 독이라고 떠들어 댔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다 기업들이 망하는 거 아닌가 우려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기업들을 각성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매일 야근, 특근을 했던 이유를 가만히 뜯어보면 불필요한 회의나 보고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주먹구구식 의사결정으로 사업 방향을 빈번히 바꾸어야 했고 시스템화되지 않은 업무 처리로 인한 아날로그적 단순 작업이 많았다. 당시 과장님들은 아침에 출근하여 조간신문을 죽 훑어보고 모닝커피와 함께 담배 타임을 갖는다. 한참 수다를 떨다 자리에 앉아 인터넷을 뒤적인다. 메일에 회신 조금 하고 보고서 조금 다듬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점심 후 담배 타임을 보내고 이제 일 좀 할까 하고 집중하는 때는 오후 3시경부터다. 그때부터 집중모드가 밤 9시까지 이어진다. 대부분의 시간은 쓸데없는 회의, 보고장표 작성 등 비생산적인 단순 작업으로 채워진다. 오늘도 야근했다고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집으로 향한다. 회의가 길어지거나 작성해야 할 보고서의 양이 많을 때는 자정을 넘기기도 한다. 이런 시기가 오래 지속되면 번아웃(Burn-Out)을 느끼고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한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강제하자 기업은 스마트한 업무 처리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조직문화 전문가를 고용하여 임직원 워라밸에 신경 쓰기 시작하였다. 회의와 보고에 대한 그라운드 룰을 정해 놓았다. 회의는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회의는 1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사전에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회의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임원 보고 횟수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전사에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매뉴얼 작업에 의한 오류를 최소화했다. 모든 업무의 디지털화를 만들어 갔으며 스마트워킹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전도 개최하였다. 임원급 관리자들도 인력 배치와 인적 자원 활용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한 방안을 스스로 마련하였다. 기업들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시간당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근무시간 부족의 효과보다 업무 효율성 증가의 효과가 훨씬 컸다. 그런데, 근무시간 단축의 효과는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번아웃(Burn-Out)이 사라졌다. 매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업무에 임하는 실무자들 개개인의 실적이 향상되었다. 흡연장이나 휴게소를 빈번하게 드나들던 과거에 비해 제시간에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밀도 있는 근무시간이 되었다. 과거에는 밀도 있게 일을 하면 손해였다. 열심히 일한다고 집에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죽어라 업무에 집중하는 직원은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머무는 절대적 시간이 짧아졌으므로 어떻게든 일을 밀도 있게 처리하고자 노력한다.


저녁 시간이 보장되므로 여러 사외 활동이 가능해졌다. 동호회 모임이 활성화되었고 개인적 학습을 위한 시간도 확보되었다. 과거에는 회사에만 처박혀있느라 돈을 쓸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여러 방면으로 지출이 생긴다. 내수 경제가 돌기 시작했다. 근무시간 단축은 경제에도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 5일제와 근무시간 강제 단축이 기업과 경제를 어렵게 만든 증거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의 긍정적 효과만 생겼다. 지금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스마트한 조직문화를 강화하고 있다. 그 문화가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워라밸을 강조하고 권장휴가를 지정하여 임직원들을 많이 쉬게 독려한다. 물론 소규모의 중소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제도인지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업무의 시스템화, 효율화를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꼭 돈이 들어가는 전산시스템 구축이 아니어도 업무 프로세스의 개선과 효율화는 내부 룰을 통하여 정착시킬 수 있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여러 부분에서 로봇이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고 있다. 사람의 일자리를 점점 기계에게 내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몇 십 년이 더 흐르면 로봇이 일자리를 차지하는 비율이 인간이 고용되는 비율보다 훨씬 높아질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노동 시간이 줄어들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주 4일, 주 5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의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노동일수를 점차 줄여가는 연습을 해야 로봇이 장악할 미래 노동시장을 맞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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