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리하는 엔지니어

by Neutron

2대 독자인 나는 주방과 거리가 멀었고 요리라는 것을 모르고 컸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사내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


라면 하나도 엄마가 끓여줘야 먹었다. 심지어 모든 반찬과 수저가 세팅된 다음 식탁에 앉았다. 결혼 전까지는 내가 왕이었다.


아내는 결혼 후 한 달간 음식을 했다. 자신도 이른 출근을 해야 했으나 새신랑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한동안 노력했다. 딱 한 달 후, 나는 아침 거르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였다. 문제는 저녁이었다. 맞벌이 신혼부부의 흔한 광경일 법 한 저녁 외식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다행히 집 주변에는 맛집들이 많았다. 그러나 매일 외식만 할 수는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돌려가며 바꾸는 메뉴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감자탕, 오징어덮밥... 또 반복... 지겨움에 다다랐다.


둘밖에 없는 집에서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어느 날 점심으로 회사에서 국수가 나왔다. 양이 적었는지 오후 내내 출출했다. 아내는 회식이 있어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하는 날이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에 온 나는 대담한 생각을 했다.


'내가 음식을 한 번 만들어 보자.'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무슨 반찬을 할까 잠시 고민하였다. 제일 쉬워 보이는 김치찌개를 내 손으로 만들어 보자고 결정하였다. 식당에서 사 먹는 김치찌개에는 김치와 양파, 돼지고기 등이 들어간 것 같았다. 먼저 냉동고에 있던 삼겹살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끓는 물에 투하하였다. 지방이 우려 나와야 깊은 맛이 나리라 생각해서 살코기 반, 지방 반을 넣고 끓였다. 물 위로 불순물 등이 뜨길래 국자로 여러 번 걷어냈다. 그다음 김치를 설어 넣고 양파도 추가하였다. 어느 정도 끓은 다음 간을 보았더니 뭔가 싱거웠다. 오기가 생겼다. 다시다를 조금 넣어 보았다. 그러자 식당에서 파는 김치찌개 맛이 났다. 계란 프라이도 하고, 식탁에 김도 올렸다. '요리 쉽네.' 스스로 대견해하며 그날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아내가 칭찬을 해 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그때부터 나는 요리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사태를 넣고 감자, 애호박을 숭숭 썰어 만든 된장찌개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새우나 조개 등 해물을 넣으면 시원한 맛이 났다. 여러 재료를 투입하여 맛의 발란스를 맞추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요리는 과학이었다. 불과 재료와 조미료의 과학이자 예술이었다.


지금은 유튜브만 검색하면 원하는 요리 레시피가 나온다. 얼마 전에는 백종원 표 묵은지 김치찜을 아내에게 해 줬는데, 그 후로 묵은지와 돼지목살이 냉장고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아내가 계속 사다가 채워 넣기 때문이다. 돼지목살 베이스에 된장을 풀어 넣는다. 묵은지, 다진 마늘, 양파를 넣고 설탕, 멸치액젓 등으로 간을 맞춘다.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물이 자작하게 졸아들 때까지 끓이면 훌륭한 묵은지 김치찜이 완성된다. 오래 끓일수록 고기가 연해진다. 고온에 장시간 노출된 단백질이 젤라틴으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양지를 고아서 만든 육수에 가래떡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훌륭한 떡국이 된다. 떡 대신 무를 썰어 넣으면 시원한 뭇국이 된다.


국내에만 머무를 수 없어 해외 요리에도 도전해 본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충분히 두르고 마늘을 얇게 썰어 마늘기름을 낸다. 페페론치노가 없으면 청양고추를 조금 썰어 넣어도 된다. 여기에 잘 삶아진 파스타 면을 넣고 약불에서 볶는다. 면이 너무 건조해지지 않게 면수를 조금 넣는다. 소음으로 간을 하고 올리브유를 조금 더 뿌린다. 널따란 접시에 담아내고 파르마산치즈와 파슬리 가루를 살포시 뿌리면 맛있는 알리올리오가 된다. 마트에서 바지락이나 모시조개를 사다가 함께 볶으면 봉골레가 된다. 요리는 이렇게 응용에 응용이다.


나는 요리, 아내는 설거지로 집에서의 역할 분담이 완결되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아내에게 먹이는 것이 즐겁다. 나에게는 재료를 다루고 간을 맞추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태어나서 30년간 부엌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던 내가 가장이 되어서야 요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오늘 저녁은 해외에서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놈에게 무엇을 해 먹일까 즐거운 고민을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를 키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