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5)

아빠

by Neutron

텍사스 휴스턴의 7월 날씨는 감을 잡을 수 없다.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한바탕 휩쓸고 가더니 금방 뜨거운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존슨 우주센터의 연구동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연신 빨아대던 강영훈은 뭔가 생각난 듯이 벌떡 일어났다. 목에 걸린 ID카드로 연구동 문을 열고 들어가 복도를 뛰어간다. ‘뇌파연구실’이라는 간판이 붙은 방 앞에서 지문인식기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갖다 대자 연구실 문이 열렸다.


“성진아! 그게 맞는 것 같아.”


그래프가 복잡한 패턴을 이루고 있는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김성진 박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게 뭔데? 몇 번째 그거를 말하는 거냐? 첫 번째야? 열 번째야?”

“감마파의 패턴이 프랙탈(Fractal) 구조로 변하는 순간이 전류를 증폭시킬 시점이야.”


성진은 오른손 엄지를 추켜세우는 동시에 바퀴 달린 의자를 발로 지치며 바로 옆 실험장치로 미끄러져갔다. 투명한 상자 안에는 흰쥐 한 마리가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다. 상자 밖에는 레이저 발생기가 열을 지어 달려있고 그 바로 옆에 센서들이 붙어있다. 그가 스위치를 켜자 붉은 레이저 불빛들이 흰쥐를 쬐기 시작한다. 도열한 센서들로부터 신호가 감지되며 모니터에 그래프가 그려진다. 주파수를 서서히 높이자 그래프의 모양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수많은 가시처럼 뾰족하던 그래프가 완만한 모양이 되어간다. 마침내 작은 패턴이 모여 큰 패턴을 이루고 그 모양이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에 다다른다. 성진이 전류를 증폭시키자 뇌파 신호도 따라서 증폭되며 상자를 진동시킨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는 혼자서 덜컹거리고 있었다. 성진과 영훈은 서로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흰쥐가 상자를 깨부수려 하는군.”

“그 녀석도 갇힌 게 답답한 거야. 하하하.”


둘은 힘들었던 연구가 성과를 보인 것에 대해 서로에게 축하를 건넸고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영훈이 돌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제 겨우 1단계 실험이 성공했는데 당국에서 요구하는 목표까지 얼마나 걸릴까?”

“글쎄…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바로 임상 단계에 들어가야겠지. 실험 대상자를 확보하는 게 문제인데…”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했으니까 지원자 모집에 어려움은 없을 거야. 단지 그 임상 대상자들의 진짜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문제겠지.”

“그렇긴 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직접 해 보면 어떨까?”

“그…건 너무 위험한 짓이야.”

“위험하지 않아. 사람에게 영향이 있는 주파수만 찾아내면 돼. 에너지를 최소로 낮춰서 실험하면 별 무리가 없을 거야.”

“그래도 임상 지원자 대상으로 먼저 해 보고 그다음에 직접 해 보는 게 어때?”

“갈 길은 멀고 시간이 없어. 그리고 사물의 고유진동수를 느끼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내가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그래.”


영훈은 자신의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 학생 시절에도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다. 성진이 영훈을 처음 만난 건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서다. 둘 다 뇌신경학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패트릭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동갑내기 한국인 둘은 타지 생활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고 마침 같은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는 동료의식이 둘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었다. 영훈은 패트릭 교수와 자주 충돌했다. 지도교수의 연구 방향과 다른 연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영훈은 자신의 관심사와 거리가 있는 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패트릭 교수는 영훈을 더 이상 지도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학교에 제출하였고 학교는 이를 받아들여 영훈의 스터디퍼밋을 박탈했다. 반면 성진은 성실함이 도를 넘어 관심이 없는 일, 심지어 학부생 지도 같은 귀찮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구 성과도 좋았다. 성진은 교수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NASA의 부름을 받았다.


NASA 관계자는 성진에게 뇌 능력 향상에 관한 비밀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성진은 천재적인 영훈의 도움 없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진은 영훈을 적극 추천하였고 그렇게 함께 일하게 되었다. 다행히 연구 주제는 영훈의 관심 영역이었다. 영훈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연구에 매달렸다. 밤샘하는 날도 많았다. 혼자서 괴로워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성진은 그를 위로해 주었다.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연구야. 어려운 게 당연해. 건강 생각해서 좀 쉬면서 하자."

"내가 이렇게 무능한 줄 여태 몰랐어."


영훈은 자책을 하곤 했지만 어쨌든 1단계 연구에 성공했다. 뇌파를 제어하여 사물에 영향을 준다는 이 결과만으로도 인류 역사가 한 걸음 전진한 것이다. 상부에 결과를 보고하고 임상실험 절차에 들어갔다.




그 남자는 유리잔의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아빠를 처음 만난 날부터 함께 연구를 하던 날들을 회상하니 감회가 새로운 것 같다. 그는 아빠가 아주 훌륭한 과학자라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민수야. 너를 보니 네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눈매가 닮았어. 성진 아저씨라고 불러라."


누군가로부터 아빠의 얘기를 이렇게 자세히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엄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빠가 나사에 근무하셨고 똑똑한 과학자였다는 것이. 그리고 내 꿈과 이상하게도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아빠를 자랑스러워해야 할 순간에 나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아빠가 훌륭한 과학자였던 것이 지금 우리 가족에게 뭐란 말인가. 엄마는 육체노동으로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고 나는 나쁜 머리로 태어나 학교에서 계급 최하위층에 위치해 있다. 이런 가족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 오히려 원망이 커져갔다. 이런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진 아저씨는 말을 이어갔다.


"나와 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박사과정을 마쳤다. 영훈이는 지도교수와의 불화로 결국 학위를 받지 못했지만 그의 연구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뇌신경에서 파동 신호를 찾아낸 거였지. 마침 나사(NASA)에서 구미에 당기는 연구를 제안했다. 인간에게 잠재된 초능력을 개발하는 연구였지. 그들의 생각은 인간의 의도대로 대기를 제어할 수 있다면 홍수나 가뭄, 태풍 등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거였어. 지구의 대기 현상은 에너지의 이동이다. 한 곳에 쌓인 에너지를 지표에 골고루 흩뿌려서 엔트로피를 높여가는 자연스러운 물리 현상이지. 하지만 그 과정이 급격히 진행된다는 게 문제야.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다. 대기를 제어해서 에너지를 천천히 이동시킬 수만 있다면 그런 자연재해로 인해 사람이 피해를 보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연구의 배경이었다. 대기를 제어하는 것은 현재 과학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 아버지가 뇌파증폭기술을 개발하지 전까지는. 우리는 인류를 위한 연구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영훈이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신이 직접 실험 대상이 되었다. 뇌파증폭기를 제작해서 자신의 뇌파를 직접 제어하려 했지. 실험은 성공적이었어. 영훈이는 염력(사물을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능력)과 함께 투시력(시야를 가리는 물체 너머를 보는 능력)도 시연해 보였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동전을 움직였고 서랍 안에 들어있는 보고서 글자를 읽어냈어. 초능력을 시연하는 그의 얼굴은 황홀함에 싸여있었어. 시연을 마치고 나서 영훈이는 모든 게 명확히 보인다고 했어. 더 이상 상쾌할 수 없다고 했어. 그동안 머리로만 이해해 오던 세상을 몸으로 이해했다고 했어. 대기를 제어하는 염력을 개발한다는 프로젝트 목표에 더해 결과물로 투시력까지 얻은 거야."


여기까지 말을 마친 성진 아저씨는 목이 마른 지 벌컥벌컥 물컵을 비우고 다시 한가득 채워와서 앉았다.


"연구 성과를 보고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충격적인 얘기를 엿듣게 되었다. CIA(미 중앙정보국)가 개입하더니 그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꾼 거야. 그들은 초능력을 가진 스파이 양성을 원했지. 1980년대는 미국 소련 간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였어. 양국은 군비 경쟁과 더불어 첩보 경쟁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서로의 정보를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어. 만약 사람이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거나 상자 안에 감춰진 문서를 투시할 수만 있다면 바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거야. 강력한 경쟁국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는 거지. 소련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된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그들은 인류를 위한 연구를 개인적 권력 야욕에 쓰려고 했어. 우리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성진 아저씨는 주먹을 쥐고 결연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결심했어. 연구 결과물을 그 나쁜놈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연구에 사용된 모든 데이터를 지운 후 그 놈들을 따돌리고 한국으로 도망쳐올 계획을 세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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