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6)

임상 실험

by Neutron

존슨 우주센터 컴파운드 내 연구 7동은 흰 페인트로 말끔하게 칠해져 있는 복층 건물이다. CIA 요원들이 장악한 후 성진과 영훈은 컴파운드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연구동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내부 기숙사를 배정받았고 그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오늘은 1차 임상 대상자들이 선발되어 연구동으로 들어오는 날이다. 이들도 성진, 영훈과 함께 같은 기숙사 건물에 기거하고 일정 기간 동안 외출이 금지된다. 성진과 영훈의 연구실은 1층 복도 맨 끝에 있다. 영훈은 연구실 의자에 앉아 수많은 전선 가닥이 연결된 반구형 뇌파증폭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시선을 고정한 채 옆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성진에게 말한다.


"이걸 써야만 능력이 발휘되는 걸까?"


눈을 살며시 뜬 성진이 대꾸한다.


"증폭이 없으면 안 되잖아."

"아니, 증폭을 훈련할 수만 있으면..."

"그게 가능해?"

"내가 직접 시연하는 도중에 생각난 건데, 원리를 잘 이해하고 연습하면 스스로 뇌파의 크기도 제어할 수 있을 거 같아."


자세를 고쳐 앉은 성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영훈아. 나도 직접 해 볼까?"


영훈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둘 중 하나는 뇌가 깨끗한 채로 있어야 돼. 그래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수 있어."

"무슨 말이야. 네 뇌가 더럽혀지기라도 했단 말이야?"

"우리는 연구 자료를 모두 폐기할 거야. 그러면 이 세상에 이 원리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둘밖에 없어. 만약... 만약의 경우에 내 뇌신경이 손상된다고 해도 너만은 이 연구를 지켜야 돼."

"무서운 소리 좀 작작해라. 그렇게 될 일은 없어. 우리는 한국에 가서 이 연구를 마저 끝낼 거야. 반드시 둘이서."


성진은 자못 비장했다. 둘은 누가 들을세라 아주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주고받았다. 연구실 안에 도청장치가 없는 것을 이미 확인했지만 그들의 계획이 CIA에 알려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들은 영영 한국 땅을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오후가 되니 간편한 운동복 차림의 임상 대상자 열 명이 연구동 안으로 들어와서 지하 강당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분명 스파이 훈련을 받은 CIA 요원들일 것이다. 원래 성진과 영훈이 요청했던 임상 대상자의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의학적으로 지적 장애 판정을 받았을 것

2. 본인의 의지가 있을 것

3. 가족의 동의가 있을 것


뇌파 제어를 통해 인지능력 향상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이론적 검증을 마친 상태였다. 성진과 영훈은 우선 이 연구를 지적 장애인에게 적용해 보고 싶었다. 그들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과 고통 속에서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들이닥친 대상자들은 누구보다도 명석한 두뇌를 가진 신체 건강한 젊은이들이다. 모두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 보려는 듯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지하 강당에 모인 젊은이들은 각자 배정된 의자에 앉았다. 함께 배석한 의료진이 그들 몸에 바이탈(Vital) 센서를 붙인다. 가슴과 팔목, 발목 등에 센서를 단 그들 앞에는 흰 테이블이 하나씩 있고 그 위에 반구형 뇌파증폭기가 놓여있다. 그들이 뇌파증폭기를 뒤집어쓰니 테이블 위에 동전 하나가 덩그러니 남는다. 그들은 마치 열 지어 앉은 로봇 같았다. 요원들을 이끌고 온 검은 정장 차림의 페드로는 주의 사항을 큰 소리로 일러준다.


"생각을 집중하고 동전의 파동을 느낀다. 파동이 느껴지면 생각으로 동전을 움직인다. 여기 있는 닥터 킴이 여러분의 뇌파를 증폭시켜 주면 동전의 파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동전의 파동이 느껴질 때까지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턱수염을 수북이 기른 갈색 곱슬머리의 페드로는 정보국 요원을 교육시키는 교관이다.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날카로운 눈빛과 짧게 끊는 군인 특유의 말투를 가졌다. 그가 성진을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성진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레이저 스위치를 켰다. 모니터에는 1부터 10까지 번호가 할당된 화면이 나뉘어 있고 각각 뇌파와 바이탈 그래프가 그려지고 있다. '윙' 하는 고주파 음이 들리더니 요원들 머리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요원들은 각자 테이블 위에 놓인 동전을 쏘아보고 있다. 잠시 후 10개의 뇌파 그래프 중 3개가 흔들리더니 프랙탈(Fractal) 구조에 진입했다. 성진은 그 3개 장비에 증폭신호를 보냈다. 해당 테이블 위에서 동전들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각각 옆과 앞으로 쓱 미끄러진다. 10명 모두 바이탈은 안정적이었다.


한 시간 동안 지속된 실험에서 결국 3명만이 동전을 움직일 수 있었다. 페드로는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첫날 성과로는 만족스럽군. 고마워 닥터 킴. 그런데 안 되는 친구들은 왜 그런 거지? 이유가 뭐지?"


성진은 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준다.


"사람에 따라 감마파가 유도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어. 잡생각이 많거나 실험을 계속 의심하거나 하면 감마파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지. 하지만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어. 보고서에 제안된 명상 훈련이 효과가 있을 거야. 첫 시도에서 성공한 친구들이 아주 특별한 케이스야. 원래 훈련이 반복돼야 조금씩 진전을 보이게 되거든."


페드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원들에게 말한다.


"세 명이 동전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내일 실험을 위해 숙소에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는 별도로 명상 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는 열 명의 요원들을 데리고 강당을 빠져나갔다.


성진은 역시 미국에서 가장 영리하고 건장한 젊은이들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증폭기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염력을 첫 시도에서 성공시키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옆에 멍하니 서있는 영훈을 돌아보며 말한다.


"영훈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저 친구들 대단해."

"그... 그게... 내가... 했어..."


영훈은 더듬더듬 이상한 말을 이어간다.


"내가... 뇌파를... 건드렸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좀 얘기해 봐."


영훈은 성진을 똑바로 보더니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한다.


"내가 세 명의 뇌파를 조종했다고. 그래서 그들이 성공한 거라고."

"나도 이상하긴 했어. 성공시킨 세 명의 바이탈이 안정적이었거든. 염력을 시전하는 중에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지."


성진은 영훈의 두 팔을 붙잡고 나지막이 묻는다.


"남의 뇌파를 조종한 거야? 그럴 수가 있나? 이론적으로 가능해?"

"나도 몰라. 그냥 사람의 생각이 읽혔어. 그 주파수가 뭔지 느껴졌어. 그 파동에 내 생각을 실어서 다시 보냈어. 내가 그들의 뇌파를 증폭시킨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떻게 뇌파증폭기를 쓰지 않고도 그렇게 되는 거지?"


영훈은 고백하듯 담담히 말한다.


"사실, 얼마 전부터 스스로 뇌파를 증폭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있었어. 우리가 발견해 낸 명상 훈련 방법에 한 가지를 더해봤어."

"그게 뭔데?"

"자면서도 훈련하는 방법이야."

"자면서?"

"명상 훈련 중에 전두엽의 한 부분을 자극하면 훈련 과정을 꿈속으로 유도할 수 있어. 이렇게 매일 하다 보면 스스로 뇌파를 증폭할 수 있게 돼."


영훈은 전두엽을 자극하는 방법을 성진에게 알려주었다. 양손 엄지와 검지를 머리 위에 대고 문지르기를 반복하면서 말한다.


"단, 처음 시도에서는 누군가 그 길을 터줘야 돼. 내 경우는 뇌파증폭기가 길을 터준 셈이야. 만약 다른 사람이 이 훈련을 한다면 내가 그의 길을 터줄 수가 있어."


성진은 놀랍고 무서웠다. 영훈이 스스로 임상 실험 대상을 자처하더니 실험이 계속되는 중에 또 다른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는 정말로 이상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생각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생각을 조종하여 핵무기들을 소련으로 발사할 수 있다. 그러면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아직 사람의 생각을 조종하는 단계는 아니고 타인의 뇌파를 증폭하는 수준이지만 연구가 더 진행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능력이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영훈아. 이 연구는 좀 위험한 것 같아. 네가 뇌파증폭을 시도할 때마다 심박수와 혈압이 증가하는 것을 봤어.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이제 그만하자."


영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사물의 주파수를 느낄때 마다 얼마나 큰 희열이 오는 지 너는 모를거야. 그리고 머리도 맑아져서 모든 게 명확히 보여. 내 아이큐가 한 100 정도는 더 올라간 것 같아. 그리고 이제는 뇌파증폭기가 필요 없어. 내 스스로 훈련하면 되니까. 조금만 더 하고 그만 둘게."


영훈은 이번에도 자신의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 성진은 점점 변해가는 영훈이 안쓰럽고 이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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