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7)

탈출

by Neutron

요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첫날, 하루 일과가 끝나고 성진과 영훈은 기숙사 방에 모였다. 바닥에 지도를 펼쳐놓고 마주 보고 앉아있다. 성진이 먼저 입을 연다.


"여기가 팬트리(Pantry)가 있는 복합동이고 뒷길을 따라 이 쪽으로 50m쯤 가면 화물 출입구가 있어. 식자재 등을 운반하는 곳이지. 밖으로 연결된 출입구는 모두 요원들이 지키고 있지만 그래도 이쪽 감시가 제일 덜 한 것 같아."


성진은 틈 나는 대로 주변 건물의 용도와 구조를 익혀두었다. 그는 일어나서 창 밖을 한 번 둘러보더니 말을 이어간다.


"저기 보이는 게 복합동이야. 화물 출입구 주변으로 펜스가 있지만 그리 높지 않아서 충분히 넘어갈 수 있어. 식자재 납품 차량은 매일 1시에 출입구로 들어왔다가 2시경에 출입구를 나가지. 우리는 그 사이에 여기를 빠져나가 그 차를 기다리는 거야. 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숨어있다가 그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거지. 문제는 우리가 없어진 걸 알면 바로 수색에 나설 텐데 그들이 알아차릴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거야."


요원 대상의 임상 실험은 명상 훈련 등 여러 가지 트레이닝을 포함해서 한 달 정도 계획되어 있었다. 이번 실험의 목적은 CIA 요원들이 염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동전을 시작으로 점점 무거운 물체들을 염력으로 움직이는 과정이 남아있다.


성진은 임상 실험 2주 차에 특별 훈련 과정을 끼워 넣을 예정이다. 바로 6시간 집중 명상 훈련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 6시간 동안은 그들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에 둘은 펜스를 넘어 존슨 우주센터 근처에서 식자재 차량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식자재 차량이 나오면 운전사에게 부탁하거나 그를 위협하여 그 차를 타고 최대한 멀어진다. 물론 그전에 연구실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한다. 그 후에는 위조 여권을 만들어 주는 브로커를 찾는다. 휴스턴 시내를 걷다 보면 멕시칸 계열의 히스패닉들이 다가와서 마약을 권한다. 그들은 범죄 조직과 연결되어 있으며 분명히 위조 여권을 다루는 기술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통해 여권을 만들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것이 그들의 탈출 계획이다.


임상 실험은 며칠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2주 차에 접어들어도 동전 이동에 성공했던 3명을 포함하여 전원이 계속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페드로는 인상을 찡그리며 요원들 앞에서 '집중'을 자주 외쳤다. 그는 성진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한다.


"닥터 킴. 왜 계속 실패하는 거지? 장비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성진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자고 말한다. 인간이 가진 범위 밖의 능력을 이끌어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은, 더 이상 영훈이 개입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6시간 특훈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일부러 전류 증폭 치를 낮춰서 실험하고 있었다. 성진은 보고서에서 흰쥐 실험만을 언급했고 영훈에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숨겼다. 그 내막을 모르는 페드로는 실험결과가 더디자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페드로. 아무래도 특별한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염력의 핵심은 집중력이야. 저 친구들 모두 제대로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집중력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해. 내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6시간 동안 특별한 명상 훈련을 해 보는 게 어때?"


성진은 6시간 명상 훈련을 제안하고 페드로의 눈치를 살핀다.


"그건 프로그램에 없는 훈련인데... 상부에 보고하고 나서 허락을 받고 하자."


페드로는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사람 같다. 군인 출신이라 상명하복에 길들여져 있을 법했다. CIA 상부에서 실험 내용이 바뀐 사실을 알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변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페드로의 결정만으로 특훈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진이 다시 한번 협박 겸 설득한다.


"페드로. 당신의 임무가 저 친구들이 특별한 능력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게 아닌가? 결과가 지지부진한 것을 알면 우리도 문책을 당하겠지만 상부에서 당신을 곱게 볼 수 없을 텐데..."


순간 페드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기 와서 일주일 간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지 못했다. 마침 진급 대상자인 그는 어떻게 하든 상부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 훈련 뒤에는 바로 결과가 나오는가?"

"그럼.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


결국 페드로는 상부에는 원래 프로그램을 수행했다고 보고하는 조건으로 그 훈련을 허락했다.


다음날 오전에도 요원들 모두 동전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 성진이 전류치를 일부러 낮췄기 때문이다. 오전 일과가 끝나고 페드로가 오후 명상 훈련에 대해서 요원들에게 설명한다. 요원들은 모두 그가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하면 진짜 뛰어들 마냥 페드로에게 복종했다.


그날 오후 요원들이 명상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성진과 영훈은 연구실로 돌아왔다. 페드로는 명상하는 요원들을 지키고 있었다. 데이터 삭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가벼운 짐을 챙겨 연구실을 나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연구동 출입문을 빠져나와 복합동으로 향한다. 복합동 뒷길로 접어들 때였다.


"헤이, 닥터 킴, 닥터 강. 웨어 아유 고잉?"


식당 조리사인 에드와르도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잠깐 쉬러 나왔다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영훈이 학위가 없음에도 그를 닥터라고 불러주었다. 베네수엘라계 미국인인 그는 아시아인이 매우 똑똑하고 특히 한국인들은 특별하다고 성진과 영훈을 추켜세워주곤 했다. 미국을 위해 타지에서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도 자주 건네주었다. 그런 그도 백팩을 메고 식당 뒷길로 걸어가는 성진과 영훈이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성진이 재빨리 둘러댄다.


"굿 데이, 에드와르도. 며칠 째 안에만 갇혀있었더니 답답해서 산책 겸 나왔지. 여행 기분도 내고 말이야."


성진은 그에게 등에 맨 백팩을 보여주며 웃었다. 에드와르도가 맞장구친다.


"CIA 놈들이 들어온 이후로는 밖에 나간 적이 없지. 답답했겠네. 좋은 산책되길 바라."


성진과 영훈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뒷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둘은 화물차 출입구에 도달했다. 에드와르도는 담배를 다 피우고 들어간 것 같다. 둘은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펜스를 넘기 시작했다. 펜스 밖은 넓은 잔디밭이고 군데군데 라이브 오크(Live Oak)가 심어져 있다. 둘은 재빨리 뛰어가 둥우리가 가장 큰 놈 뒤에 몸을 숨겼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앞을 향해 뛰었다. 컴파운드 출입구로부터 이어진 도로를 따라 한참을 뛰어가 건물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쯤 다시 나무 뒤에 숨었다.


나무 뒤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멀리서 트럭 한 대가 도로를 따라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둘은 재빨리 뛰어가 도로 한 복판에 섰다. 양팔을 위로 높이 휘저으며 트럭을 세웠다. 트럭 운전사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차에서 내린다.


"왓 아유 두잉 히어, 닥터 킴?"


그는 에드와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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