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8)

훈련

by Neutron

식자재를 운반하는 기사는 물품을 싣고 컴파운드 내부로 들어왔다가 하역 작업 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그의 팔뚝에는 주삿바늘 자국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가 영내 의료센터 응급실에 누워있는 동안 누군가 트럭을 반납해야 했다. 마침 바람을 쐬고 싶었던 에드와르도가 자원했고 그 차를 몰고 나오게 된 것이다.


성진은 에드와르도에게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른 어떤 변명도 도망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성진은 자신들이 왜 나사에 들어왔으며 원래 연구 목적은 무엇이었고 CIA가 개입하면서 어떻게 그들의 나쁜 의도를 알게 되었고, 왜 도망치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에드와르도의 눈이 커지더니 신기한 듯 말한다.


"그럼 초능력을 갖게 되는 거야? 라잌 수퍼히어로우?"


에드와르도는 운전 중에 왼쪽 주먹을 앞으로 쭉 뻗어 보인다. 그는 어린애 마냥 좋아했다. 자기도 그런 능력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성진은 불안했다. 에드와르도의 전화 한 통이면 CIA 요원들이 금방 자신들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에드와르도는 매우 협조적이다. 휴스턴에서 태어나 잔뼈가 굵은 그는 다운타운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성진과 영훈을 시내 어딘가에 내려주고 정보를 주었다.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빨간색 문이 있을 거야. 그 문을 두드리고 에드와르도 소개로 왔다고 하면 여권 만드는 일을 도와줄 거야. 굿 럭!"


막막했던 탈출 여정에 에드와르도는 구세주와도 같았다.




여기까지 긴 이야기를 마친 성진 아저씨는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아버지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지?"

"네. 아직... 살아계신지도 모르겠어요."

"네가 아직 어렸을 때 갑자기 사라져서 네 어머니는 물론 나도 놀랐다. 혹시 놈들에게 잡혀간 게 아닌가 의심했어. 그런데 내가 확보한 정보에 의하면 그건 아니었어. 놈들은 아직도 네 아버지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거야. 나도 마찬가지로 쫓기는 몸이지. 그 친구는... 아마도 놈들을 피해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성진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버지 없이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제수씨와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도 쫓기는 몸이라 네 가족과 접촉하는 것을 당분간 피했어.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네가 있다니...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성진 아저씨는 그의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나는 고장 난 시계와 거기서 발사된 불빛, 그리고 미니칩과 주소가 적힌 종이 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흠. 영훈이가 너를 내게로 보낸 거였군. 네 아버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그 시계에 메시지를 담아 너를 내게 보낸 거야. 네가 그걸 발견해 주기를바라면서..."


아저씨는 나를 이끌고 작은 양탄자가 깔려있는 거실 모퉁이로 갔다. 양탄자를 젖히자 작은 쇠고리가 나타났다. 쇠고리를 잡아당기자 마루 일부분이 문이 되어 열렸다. 문의 틈새는 마루 바닥의 문양과 잘 어울려 얼핏 보면 거기에 문이 있는 줄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는아래로 나있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며 나에게 오라고손짓을 했다. 그를 따라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가 전등 스위치를 켜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거기에는 작은 연구실을 옮겨놓은 것 같이 여러 전자 장비들이 놓여 있다.


아저씨가 내게서 건네받은 미니칩을 리더기에 집어넣고 컴퓨터를 켜니 화면에 데이터를 읽는 중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며 수십 개의 파일이 나타났다. 그 중 첫 번째 파일을 클릭하자 사람의 뇌 그림과 여러 수식 등 이론을 설명하는 문서가 열렸다. 그리고 맨 마지막 파일을 열자 동영상이 나왔다. 그 영상에는 낯이 익은 얼굴이 화면을 보고 말하고 있었다.


"민수야. 네가 이 영상을 볼 때쯤 나는 너와 네 엄마를 떠났거나 폐인이 되어서 네게 부담을 주고 있겠구나."


순간 나는 울컥 어떤 덩어리를 한 모금 삼켜야 했다. 그토록 원망하고 꿈에 그리던 아빠였다. 사진 속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드럽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요즈음 자주 블랙아웃이 된다. 점점 그 주기가 짧아지고 오랫동안 지속된다. 아마 대뇌에 손상을 입은 것 같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조만간 영원히 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미안하다... 가족을 끝까지 부양하고 지키지 못한 걸 사과한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도중에 가끔씩 격한 감정이 묻어 나온다.


"내가 이 영상을 찍는 이유는 네게 전해줄 게 있어서다. 네가 빛을 발견한 탁상시계는 아빠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물건이다. 고장 나긴 했지만 내가 뇌과학을 공부할 이유를 준 고마운 존재다. 엄마에게도 이 시계는 절대로 버리지 말고 네 방 책상에 항상 놓아두라고 당부했다. 나는 시계 안에 자료를 담은 칩과 성진이의 주소를 숨겨놓았다. 그리고 네가 열다섯 살을 넘기는 해부터 랜덤한 주기로 다이오드가 빛을 발하게 세팅해 놓았다. 네가 언젠가는 그 빛을 발견해 주기를 바라면서... 너는 어려서부터 너도 모르게 뇌 개발 훈련을 받았다. 아빠가 사랑하는 네게 물려줄 거라곤 이것뿐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탁월한 뇌 능력을 갖게 될것이다. 지금 이 영상을 보는 날 네가 열다섯이 넘었다면 바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류가 지금껏 이룩해 놓은 학문을 아주 짧은 기간 안에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며, 네 의지에 따라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할 수 있고, 심지어 인류를 위기에서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네가 커서도 착한 마음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멍청하고 공부도 못하는 열등생이다. 뇌 개발 훈련의 결과가 이런 거라면 지옥 훈련에 돌입한다고 해도 나아질 수는 없다. 그리고 무슨 훈련을 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네가 한 살 때 너의 뇌에 길을 터 주는 작업을 완료했다. 그 후로 매일 꿈속에서 뇌파 증폭 훈련을 수행하도록 유도해 주었다. 나도 예전에 그 훈련을 매일 반복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훈련의 부작용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훈련 도중에는 실제로 그 능력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훈련 도중에 염력이나 투시력을 시연하면 중추신경계, 특히 대뇌 신경 조직에 큰 무리를 준다. 당시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훈련과 시연을 병행하고 있었다. 내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네가 태어나기 얼마 전이다. 인지력과 사고력도 급격히 떨어져 뇌 훈련을 하기 전보다 못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수 너는괜찮다. 내가 특별히 뇌 기능을 잠시 정지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훈련은 매일 할 수 있지만 그 능력은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뇌 기능이 얼마동안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지 않겠지만, 열다섯 살 이후로는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 인지력과 사고력이 조금 떨어지겠지만 그때까지 몇 년만 참으면 된다."


그리고는 성진 아저씨에게 말을 이어갔다.


"성진아. 네 말을 안 들은 걸 후회한다. 넌 내 가장 친한친구다. 언젠가 다시 만나서 함께 소주잔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안 좋다. 민수가 너무 불쌍하다. 내가 민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 잘 전달될 수 있게 네가 좀 도와주길 바란다. 이렇게 부탁한다. 방법은 바로 이전 파일에 잘 기록해 두었다."


아빠는 화면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내 눈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다. 아빠는 나를 버린 게 아니었다. 당신의 몸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아빠를 오해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성진 아저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네 아버지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몸도 성치 않을 텐데... 끼니는 잘 챙기고 있는지..."


아빠가 말한 파일을 열고 문서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성진 아저씨는 나를 옆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전선이 연결된 몇 개의 센서를 내 머리에 붙인다.


"네 아버지가 네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구나."


성진 아저씨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눈을 감고 앞에 태양이 이글거리는 모습을 상상해라. 그 태양이 한 점으로 축소될 때 오른손 검지를 까딱하고 신호를 보내라. 모든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눈은 꼭 감은 채로 있어라."


나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따르는 교단의 신도처럼 성진 아저씨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눈을 감으니 찌릿하고 전기가 느껴진다. 바로 앞에 커다란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다. 찌릿한 전기가 어떤 패턴을 가지고 내 머리를 자극한다. 갑자기 앞에 있던 태양이 점점 작아지더니 빛나는 하나의 점으로 축소된다. 나는 오른손 검지를 까딱했다. 그러자 또 한번 찌릿함을 느끼며 나는 그 꿈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내 앞에 동전이 있고 나는 뇌파증폭기를 머리에 쓰고 있다. 내가 동전을 노려보자 동전을 이루는 금속 원자들의 진동이 느껴진다. 동전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전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하자 동전은 테이블 위에 둥실 떠올랐다. 나는 동전을 이리저리 허공에서 맘대로 움직였다. 한참을 그렇게 하니 머리가 맑아졌다. 모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흔드는 것을 느낀다. 눈을 떠 보니 성진 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어떠니? 어디 아프거나 이상한 데는 없고?"

"너무 상쾌해요. 이대로면 날아갈 것 같아요."


성진 아저씨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한다.


"축하한다. 이제 네 능력을 맘껏 써 봐라."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으나 머리가 맑아진 것은 틀림없다. 그동안 닫혀있던 검고 두꺼운 커튼이 한 번에 열어젖혀진 느낌이다. 그래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을 한 몸에 다 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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