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16)

김반장

by Neutron

다온 누나 집에 얹혀 산지도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산에 올라 죽어 쓰러진 참나무 줄기를 모아 와서 작은 장작으로 쪼개는 일을 했다. 그 장작은 아궁이에서 활활 타며 커다란 국솥을 끓이는 데 쓰였다. 별로 다른 할 일이 없었으므로 땔감 구하는 데 전념했더니 어느새 장작이 가게 주변 여기저기 쌓이게 되었다. 염력의 도움으로 무거운 나무들을 옳기는 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이제 당분간 장작은 그만 패도 될 것 같아. 더 쌓을 데도 없다. 이걸로 올해 내내 쓸 수 있겠네.”


다온 누나는 한바탕 몰려온 손님이 빠진 후 내 늦은 점심을 챙겨주며 흡족해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왠지 누나도 동네도 친근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밥을 다 먹고 산책 겸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가게에서 작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산업용 베어링을 만드는 공장이 나타난다. 공장 앞 길은 아직 포장되기 전이라 부품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드나들 때마다 먼지가 피어오른다. 공장 전체는 낮은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있다. 정문 바로 안쪽으로 널찍한 마당이 있고, 오른쪽에 사무실로 쓰는 2층 회색 시멘트 건물이 있다. 마당 건너 정면에는 커다란 출입구가 나있는 생산동이 굉음과 기름 냄새를 피우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밀링머신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한켠에선 용접 불꽃이 튄다. 그 사이 김반장이 밀링과 용접 사이를 오가며 작업지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우징 공차는 백분의 오로 맞춰야 돼. 저번처럼 대충 하다가 전량 빠꾸 맞는 수가 있어… 박군아, 용접봉을 조금 더 세워야지. 거기 누설 생기면 큰일 난다.“


제조업 현장이 처음이라 복잡한 구조의 공작기계들이 신기하면서도 그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며 내뿜는 소음에 두렵기도 했다. 나는 책에서 사진으로만 본 물건들을 실물로 견학할 기회로 여기며 장비 하나하나, 공정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출입구 제일 가까운 쪽에 원자재를 쌓아놓은 곳이 보인다. 베어링 하우징을 가공할 원형 금속봉들이 한 묶음씩 놓여 있다. 그 뒤로 원형봉을 일정한 크기로 자르는 커팅기가 있고, 내부 구멍을 가공하는 드릴링과 보어링 장비가 있다. 절삭과 연마가 끝나면 그 옆에 있는 검사 장비가 가공된 외경과 내경을 측정하고 양품을 분류한다. 그 옆 조립 공정에서는 작업자들이 베어링 외륜과 내륜 사이에 금속 볼을 끼워 넣는다. 조립이 완료된 제품을 사람이 하나씩 들여다보고 돌려보며 육안 검사를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출입구 가까이에 포장인원이 있고 만들어진 베어링을 수십 개씩 한 박스에 담는다.


양품의 베어링을 만드는 과정. 양품의 인간이 완성되는 과정과 같은지 생각해 본다. 결함 없는 원재료는 인간이 태어난 배경이다. 안정적인 부모의 소득과 사회적 지위 그것이 결함 없는 재료이다. 절삭과 연마는 제대로 된 교육이다. 심혈을 기울일수록, 인건비와 시간을 투자할수록 규격에 맞는 인간이 만들어진다. 외관 및 치수 검사는 시험과 평가다. 양품의 조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측정기를 잘못 다루거나 엉뚱한 곳을 측정하면 양품 판정을 받을 수 없다. 부품이 쓰일 곳에 있는 이들이 원하는 부분의 치수와 강도를 측정하도록 제도화했다. 마침내 양품의 조건을 갖춘 인간들은 무더기로 박스에 포장되어 사회에 던져진다. 이 인간 베어링들은 각각의 다양한 기계에 조립되어 제 역할을 한다. 항공기나 자동차에 쓰이는 베어링은 최상품이다. 농기계 등에 쓰이는 그보다 품질이 못한 베어링도 있다. 하급 베어링들은 도매로 팔려가는데 임시 스페어파트(Spare Part)가 되거나, 오래 쓰임을 받지 못한 것들은 제 역할 한 번 못하고 고물로 처분되기도 한다. 제조 과정에서 상처가 나거나 잘못 가공된 것들은 용접으로 때워진다. 뜨거운 불 맛을 한 번 보면 정신을 차리지만 그 제품은 영원히 양품이 될 수 없다. 이들도 도매급으로 팔려가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베어링은 양품과 불량품을 나눌 수 있다. 그 부품의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축(Shaft)을 아무 탈 없이 오래도록 회전시키는 것. 그것이 베어링의 역할이다. 그럼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의 한 부분에서 베어링처럼 자신보다 더 중요한 부품을 돕는 것, 그것인가? 인간을 양품과 불량품으로 나눌 수 있는가?


“어이, 학생. 여기서 이러다 다쳐. 빨리 가!”


김반장의 화난 목소리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서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때 마침 생산동 뒤편 창고에서 부품을 실어오던 지게차가 내 쪽으로 후진하고 있었다. 공장 내부 공정에 팔려 나도 지게차가 내게 돌진하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지게차 운전자도 코너를 돌아 후진하던 참이라 미처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지게차에 치일 뻔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몸이 살짝 공중에 뜨더니 옆으로 옮겨졌다. 땅에서 떨어진 높이가 몇 mm도 되지 않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으면 내가 스스로 지게차를 피한 것으로 여길 상황이다. 그 덕에 지게차는 내가 서있던 자리를 지나서 가던 길을 별 탈 없이 가고 있었다. 김반장 쪽을 보니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분명 누군가 염력을 써 나를 움직이게 했다. 다온 누나의 목격담도 있고 해서 지금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김반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리저리 오가며 작업자들에게 고함을 치고 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게차가 내 바로 옆에 올 때까지만 해도 김반장은 내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보지도 않고 염력을 쓰는 것은 나도 할 수 없는 능력이다. 김반장의 정체를 밝히고 말리라는 오기가 생겼다. 방 안에 누워있는데 다온 누나가 밖에서 부른다. 문을 여니 누나가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저녁 배달 좀 같이 가자. 이번엔 그릇이 좀 많아서 말이야. 공장에서 야근이 있을 때 가끔씩 이렇게 배달을 시켜.”


우리는 배달통에 국밥 그릇을 채우고 가게를 나섰다. 언덕을 넘어 비포장 도로를 지나 공장 정문을 통과하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경비 아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새로 온 직원인가? 아직 어려 보이는데.”

“당분간 일을 도와주러 온 친척 동생이에요.”

“그래, 혼자 하기 버거운 일이긴 하지. 저쪽에다 놔둬.”


경비 아저씨가 가리킨 곳은 회색 시멘트로 지어진 사무동이다. 1층 입구 옆 널찍한 곳으로 들어갔는데 식당 겸, 회의실 겸 해서 사용하는 장소 같다. 이미 테이블들이 몇 개 이어 붙여져 긴 식탁처럼 둔갑해 있었다. 우리는 그 테이블 위에 국밥과 수저를 세팅해 놓았다.


저녁 먹으라는 경비 아저씨의 외침 후 작업복의 남자들이 몰려들었다. 김반장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인사를 하고 막 나가려던 참이다. 웬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술이 머리끝까지 취해 몸도 잘 못 가누는 그 남자는 김반장을 보더니 냉소를 던진다.


"김반장님, 식사 맛있으세요? 밥이 잘도 넘어가겠네요."


김반장은 듣는 듯 마는 듯 먹는데 집중한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어!"


김반장 옆에 앉았던 머리 희끗한 아저씨가 보다 못해 일어나 말린다.


"정반장, 진정하고... 너무 취했어. 술 좀 깨고 다시 얘기하자."

"이거 놔요. 저 인간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는데 진정하게 됐어요? 내가 이 자리까지 오려고 얼마나 죽을힘을 다했는데... 어디서 굴러먹은 지도 모르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 자리를 뺏어갔는데... 이 원통함을 어떻게 풀어야 하냐구요."


그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갑자기 엉엉 운다.


"회사가 자네 집인가? 자네가 자기 집 망하게 하는 건 자유지만 회사를 망가뜨리는 건 직원들한테 죄짓는 거야."


김반장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그래? 난 죽도록 회사에 충성한 죄 밖에 없다구."

"치부를 여기서 다 들춰야겠나? 더 창피당하기 전에 돌아가게."

"헛소리 마. 실력 좀 있다고 사장한테 꼬리나 치고 아부나 하는 거 모를 줄 알아? 당신이 죄 없는 나를 모함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김반장은 낮은 목소리로 조목조목 따졌다.


"작년 가공반 불량률이 얼마지? 10프로야 10프로. 이게 말이 되나? 그로 인해 회사 품질 비용으로 꽂힌 돈이 자그마치 5억이야. 자네가 나태하게 근무하는 동안 회사돈이 줄줄 새고 있었다고. 또, 폐자재 빼돌려 조금씩 현금화한 거 모를 줄 아나? 내가 주의를 줬는데도 자네는 멈추지 않았어. 금액의 크고 적음을 떠나서 이건 회사 자산 횡령 범죄야. 도의적으로도 자네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는 부류네. 열심히 제 일을 하고 있는 동료를 일부러 깎아내리고 모함했어. 승진에 눈이 멀어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거야. 내 말에 잘못이 있으면 말해 보게."


술기운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퍼렇게 변한 것도 잠시, 앉아서 김반장의 이야기를 듣던 그 남자가 갑자기 식탁 위에 있던 국밥 그릇을 들어 그 내용물을 김반장 얼굴에 뿌리려 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염력을 동원했다. 그러자 국밥 뚝배기를 쥔 두 손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가더니 스스로 머리에다 국밥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자해하는 것으로 알았다.


"정반장, 이러면 안 돼. 아무리 억울해도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면 쓰나."


정반장은 김이 나는 콩나물과 선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어안이 벙벙하여 서있다. 옆에서 말리던 남자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김반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열심히 국밥 그릇을 비우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도 그를 따라 바쁘게 숟가락질을 해댔다. 잠시 후 밖에서 정반장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대로 물러날 것 같아? 당신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게 할 테니 두고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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