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18)

공장

by Neutron

가게에 도착해 보니 홀 안쪽으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얼마 전 손가락이 부러지고 공중에 떴다 바닥에 메쳐진 동네 양아치들이다.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은 남자들 틈에 깔끔한 회색 정장차림의 남자가 왼손을 턱에 괴고 앉아 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의 손목에는 금빛이 번쩍이는 시계가 채워져 있다. 누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국밥 먹으러 왔냐고 퉁명스레 물었다. 그러자 정장차림의 남자가 일어서며 알듯 모를 듯 미소를 지었다.


"동생들이 하도 이상한 얘기를 해대서... 그게 뭔가 궁금해서 왔어요. 다온씨."

"형님, 조심하십시오. 저도 한순간에 당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형님. 가까이 가면 위험합니다."


형님이라 불린 남자는 오른손 검지를 세워 입술에 대고 동생들을 쳐다본다. 동생들이 입을 다물자 그제야 말을 이어간다.


"봉걸이와 철수의 손가락을 모두 부러뜨렸다는데... 다온씨가. 그것도 손끝 하나 까딱 안 하고..."

"내가 알게 뭐예요. 자기들이 제풀에 다쳐가지고는..."

"그래서 정말인지 확인해 보려구요."


그는 손가락이 성한 나머지 동생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은 형님의 명령을 어기지 못해 쭈뼛거리며 누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나는 염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발을 붙잡아 두었다. 그들은 '어' 하며 제자리에서 팔만 허우적 거린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형님이라는 남자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내 말이 우스워? 참 교육 한 번 할까?"

"아닙니다, 형님. 발이 안 움직입니다. 정말입니다."


형님이라는 남자는 뭔가 낌새를 챘는지 양아치들의 발을 노려보고 있던 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꼬마는 누구지? 다온씨."

"내가 왜 대답을 해야 되죠? 식사하러 온 게 아니면 빨리 돌아가세요."


그 남자는 들은 체도 않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다리를 향해 던진다. 날아오는 물건을 보니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칼 같았다. 나는 재빨리 그 칼에 집중했다. 무섭게 날아오던 칼은 내 허벅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이 꼬마였구나."


그는 공중에서 멈춰버린 그 칼을 보더니 갑자기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부하들을 모두 물러나게 하고 자신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했다.


"다온씨, 미안했습니다. 동생들이 철이 없어서 무례를 저질렀네요."


그는 무리들을 데리고 가게를 나갔다. 그들이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자 누나는 내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민수가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내 능력이 작지만 정의를 구현하는 데 사용된 것이다. 누나를 지킬 수 있어서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또 흘렀고 그 양아치들은 더 이상 가게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가게에 나가서 누나의 일을 제법 돕고 있다. 손님 맞을 준비부터 청소와 설거지 등, 누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그녀를 돕는 것이 즐거웠다. 누나는 매일 식당에서 허드렛일로 시간을 보내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제안을 하나 한다.


"요 앞 공장에 가서 일을 배워보는 건 어때? 내가 김반장님한테 한번 말해볼까? 도망 다니는 처지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배움을 멈추면 안 돼."


누나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식당일 보다는 제조업 현장에 뛰어들어 기술을 배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누나의 배려심에 감동한 나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는 다음날 날이 밝기 무섭게 공장으로 찾아가 김반장을 만났다. 당분간 허드렛일을 하는 임시직을 거치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내었다. 나는 그날 오후부터 바로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맡은 일은 자재 창고에서 원형 봉을 대차에 싣고 와 작업장 한 편에 쌓아놓는 것이다. 직경 100mm, 길이 1m의 금속 원형봉 100kg의 무게는 힘센 장정이 혼자서 들기에도 버겁다. 그러나 나는 염력의 도움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자재를 옮길 수 있었다. 물론 남들이 염력을 사용하는 줄 모르게 힘을 쓰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 김반장이 팔씨름을 이기는 이치와도 같다.


자재 나르는 일이 끝나면 선반과 밀링머신이 뱉어내는 스크랩*을 모아 자루에 담거나 베어링이 포장된 박스를 트럭에 싣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김반장을 선두로 작업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누나의 식당으로 가는데 나도 그 틈에 끼어 누나의 흐뭇한 눈빛을 즐기며 국밥을 뚝딱 비운다.


*스크랩 : 기계가공 중 깎여 나간 금속 파편이나 부스러기들. 대개는 스프링처럼 돌돌 말린 형태로 떨어져 나온다. 나중에 녹여 재활용이 가능하다.


"회사 작업복이 제법 잘 어울리는데. 기술을 열심히 배워서 장인이 돼라."


식사를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가는 내게 누나는 덕담을 잊지 않는다. 학교를 못 간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크게 아쉽지 않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여기서 배운다. 양품으로 길러지려면 필수인 공교육 시스템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아직도 책을 달달 외우고, 옳다고 강요된 지식의 단편만을 머릿속에 저장한다. 그 저장의 양으로 평가받고 기계처럼 사고하며 친구를 경계한다. 함께 땀을 흘리고 서로 돕는 공장 시스템이 사람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공교육 시스템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반장은 공장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맺고 끊는 게 확실하고, 철두철미하고, 공정하며 절대로 감정에 치우치는 법이 없다. 이보다 규모가 훨씬 큰 대기업 공장의 관리를 맡겨도 무리 없이 소화할 것 같다. 그래서 작업자들은 김반장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는다.


공장 사무동 2층은 사무직 직원들의 공간이다. 여기에는 영업, 설계, 품질, 기획 등 주로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쳐다보고 문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나름 학교에서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다. 양품을 걸러내는 학교 시스템에서 맨 앞자리는 아니더라도 뒤에 많은 이들을 줄 세울 정도는 되는 준 양품들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생산동에서 일하는 직원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매겨진 계급이 사회에서도 이어진다고 여긴다. 따지고 보면 사무직 직원들이 생산직 직원보다 더 우월한 근거는 없다. 일이 몰려 야근, 특근을 할 때면 생산직 월급이 사무직보다 많을 때가 잦다. 그들의 위안은 단지 손과 옷에 기름이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깔끔한 양복을 입고 매끄러운 손을 유지하는 것이 우월의 상징인 양 매일 자위에 빠져 산다.


설계 부서의 최부장은 서울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을 나왔다. 40대 중반인 그는 항상 자신이 이 회사에서 가장 똑똑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김반장이 제품도면을 들고 설계실로 뛰어 들어왔다. 나는 마침 설계실 휴지통 비우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 이후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최부장. 이 도면 잘못된 거 같은데. 여기 열박음 치수가 너무 타이트해서 작업자들이 애를 먹네."


최부장은 김반장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성질을 낸다.


"도면에 적힌 대로 작업하세요. 너무 헐거우면 핀이 빠져서 안 돼요."

"핀을 끼울 정도로 구멍을 늘이려면 얼마나 가열해야 하는지 아나? 원재료에 무리를 주게 돼. 내구성이 떨어진다고. 작업도 힘들고. 여기 공차를 바꿔서..."


김반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부장의 입에서 막말이 나온다.


"이 아저씨가 돌았나. 당신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가르치려 들어. 대학도 못 나온 주제에."


그런 수모를 당하는 중에도 김반장은 침착을 잃지 않고 말한다.


"내가 대학 졸업장은 없어도 이 제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이 아네. 설계가 품질의 90% 이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설계 미스가 있으면 수정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설계 미스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도표 편람에서 가이드한 대로 설계한 건데."

"도표 편람은 이상적인 형상에 대해서 참고로 가이드한 거지 그게 정답은 아니네. 이 제품은 도표 편람의 형상과 많이 달라. 가장 약한 억지끼워맞춤 공차로도 충분하네."


최부장이 주변을 돌아보니 나를 포함하여 여러 개의 눈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 스스로 양품이라 여기는 불량품이 자신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방법은 위력(偉力)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설계 책임자는 나예요. 그냥 하라면 하세요, 대들지 말고. 불량 나면 내가 책임진다고요."

"이건 막무가내로 우길 문제가 아니야. 추가 공수에 따른 비용 증가도 문제지만 제품 품질에 영향을 주네. 자네가 설계를 바꿀 마음이 없다면 사장님한테 보고해서라도 바로 잡아야겠네."

"어디서 굴러먹다가 사장 아들 한 번 구해주고 자리를 꿰차더니... 사장 백 있다고 협박하는 거야?"


김반장은 막말을 퍼붓는 최부장을 뒤로하고 설계실을 나갔다. 누구라도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그런 수모를 당하면 상처를 입을 법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휴지통을 다 비우고 나서 김반장을 찾아 나섰다. 그는 자재 창고 옆 흡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니 그가 나를 보고 말한다.


"왜, 걱정돼서 왔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험악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번진다.


"착한 아이구나. 남 걱정할 줄도 알고. 그런데 난 괜찮다. 걱정할 것 없어."


그는 담뱃불을 끄고 옆에 있는 의자를 가볍게 툭툭 치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의 음성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으면서 왠지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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