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20)

협박

by Neutron

정상문은 일어나서 칼에 묻은 피를 자기 옷에다 닦고 씩 웃으며 말한다.


"대단한 능력이야! 만신이파 놈들을 한 칼에 쓸어버리다니. 네가 도와주기만 하면 우리는 이 세계를 평정할 수 있어."

"사람은 당신이 죽였어...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아직 꿈에서 덜 깬 듯 초점을 잃은 내 눈을 보며 정상문이 말한다.


"생각해 봐. 싸움이 날 때마다 네가 적들을 못 움직이게만 해 주면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나? 바로 돈과 권력이야. 네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고, 네 마음대로 사람들을 부릴 수 있어. 또 네 마음에 드는 여자는 모두 가질 수 있지, 흐흐흐."


그의 얼굴은 이미 세상 권력을 모두 쥔 것 같이 환희에 차있다.


"네가 나이는 어리지만 우리가 형님으로 모실게. 이 바닥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힘과 능력이 서열을 가르는 거야."


그러면서 그들은 다시 한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빠의 선물을 받은 뒤 매사에 상황 판단이 분명했던 내 머리가 지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뒤죽박죽이 됐다. 나는 바로 앞에서 살인을 목격했다. 내가 살인자를 방조했다. 이건 방조가 아니라 동조다. 내가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살인 공범이다. 나는 살인자다… 아니다, 나는 그들을 죽일 의도가 없었다. 단지 정상문의 동생들을 무사히 구출해 오는데 내 능력을 썼을 뿐이다. 나는 정상문에게 속은 거다. 살인에 이용당한 것뿐이다. 나도 피해자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합리화하던, 한 자리에서 사람이 다섯이나 죽었고 그 현장에 나의 결정적인 도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 살인의 죄를 씌우느냐 면죄부를 주느냐 하는 갈등에 빠져있는 내게 정상문이 말한다.


"저번에 식당에서 동생들의 발을 붙잡아 두고 날아오는 칼을 공중에서 멈춰 세운 그 놀라운 능력을 목격하면서 나는 그 순간 광명을 보았지. 이거면 세상을 평정할 만하다. 그날부터 나는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네게 어떻게 보여줄까 줄곧 고민을 했다. 만신이파 정도의 소규모 조직을 쓸어버리는 데 네 힘을 빌려 쓰면 어떨까 생각했어. 나는 일부러 장만신을 긁어댔지. 그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가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지나가는 그 조직 똘마니들을 이유 없이 패기도 했어. 장만신이 직접 움직이기를 기다렸지. 이 놈들은 일부러 잡힌 거야. 너를 여기로 데려올 미끼가 필요했던 거지."


그는 동생들을 보고 미안하다는 듯 눈을 한 번 찡긋 했다.


"그 이후 상황은 네가 직접 본 것처럼 만신이파의 몰락이다. 장만신과 중간 보스 네 명이 모두 없어졌으니 이제 그 똘마니들을 우리가 흡수하는데 걸릴 게 없다. 노래방과 주점 몇 개도 우리 것이 될 거고.. 우리 세력이 더 커진 거야. 제천 시내에 있는 제일 큰 조직만 잡으면 우리가 이 지역을 평정하는 거다. 거기는 여기와 사이즈 자체가 다르다. 그들 손 아래 있는 단란주점과 나이트클럽만 해도... 시골 매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여기서 덩치를 키우면 서울 입성도 가능하다. 강남 조직들을 쓸어버리면 상상도 못 할 성과가 생길 거다. 네가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가질 수 있어."


정상문의 치밀한 계획과 악랄한 수법에 치가 떨렸다. 바보같이 그의 계략에 넘어간 내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막일을 하며 지내는 것을 보고 불만이 많은 사회적 낙오자로 보았을 것이다. 돈을 먹잇감으로 던져주면 좋다고 받아먹는 그런 저급한 인간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그 사회적 불만을 범죄의 동기로 사용하도록 살살 구슬리는 중이다. 나는 그에게 경고했다.


"더 이상 나를 당신들과 엮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정상문은 첫 번째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판단하자 그다음 작전으로 변경했다.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통화음으로 들려오는 건 다름 아닌 누나의 목소리다.


"이거 놔. 놓으란 말야. 민수야 어서 도망가. 아주 나쁜 놈들이야."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정상문을 노려보았다. 염력을 쓸 낌새를 챈 정상문이 웃으며 말한다.


"가만! 우리는 쪽수가 많아. 네가 나를 어떻게 한다면 누나는 무사하지 못할 거야. 팔 하나 없애주면 평생 네게 고마워하며 살겠지. 다리를 하나 절게 만들까? 아니면 고운 얼굴에 칼자국을 길게 만들어줄까?"


내 염력은 원거리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반드시 사물을 보고 그 진동을 느껴야만 쓸 수 있다. 내가 누나 옆에 항상 붙어있어야 그녀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 내게 정상문이 다시 한번 협박한다.


"네가 여기서 도망가도, 우리한테 그 능력을 써도, 누나는 무사하지 못할 거야. 네가 지금 누나 옆에 있는 동생들을 제압한다고 해도 내게는 동생들이 많아. 그들이 틈을 봐서 반드시 네 누나의 어디 한 군데를 망가뜨릴 거야."

"누나를 풀어줘!"


나는 소리쳤지만 그들이 순순히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한 가지만 더 해줘. 그럼 누나를 건드리지 않을게. 약속하지."


당장 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들에게 협조하는 것뿐이다. 두 번째 계획까지 미리 세워둔 정상문의 치밀함이 두려워졌다.


"살인을 돕는 일이라면 지구가 무너져도 다시는 안 할 거야."


정상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이번 일은 살인이 아니야. 오히려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지."


사람을 죽이는 일만 아니면 누나를 위해 그 어떤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따라 매일 보던 저녁노을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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