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21)

by Neutron

정상문 일당이 나를 검은 승용차에 싣고 데려간 곳은 시내의 어느 가정집 앞이다. 집들이 줄지어 선 어두운 골목에서 그 집 앞 가로등만 환하게 빛을 뿜고 있다. 담쟁이가 엉켜있는 높은 돌담 중앙에 커다란 철제 대문이 나있고 그 옆으로 제법 큰 셔터문의 차고가 있는 2층집이다. 차를 그 집에서 약 30m쯤 뒤에 세워두고 정상문이 말한다.


"이 집에는 아주 나쁜 놈이 산다. 선량한 사람들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놈이지. 마음 같아서는 제거해 버리고 싶지만 네가 원하지 않으니 죽이지는 않을 거다."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람 죽인다는 말을 남발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인간을 특별히 여기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에게는 사람 죽이는 일이 소나 돼지 도축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이런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이 왜 여태 시골 촌 구석 양아치로 살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조금 있으면 그놈이 집에 도착할 거야. 차에서 내릴 때 그와 운전사의 발을 묶어놓기만 하면 돼. 그 운전사란 놈이 아주 무서운 놈이거든. 그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할 거다."


그는 휴대폰을 한 손에 들고 흔들며 말을 안 들으면 전화 한 통화로 누나를 어찌하겠다는 협박을 하는 것 같다. 누나가 그 깡패들에게 잡혀있으므로 반항할 수가 없다.


"절대로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안 돼요."

"약속하지. 그놈을 잡아서 뭣 좀 물어보기만 하면 돼."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그 집 앞으로 다가온다. 차가 대문 앞에 멈춰 서자 운전하던 사람이 뛰어나오더니 뒷좌석 문을 열어준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뒷좌석에서 내린 후 운전사는 문을 닫고 다시 운전석으로 뛰어간다. 나는 두 사람의 발을 묶어두었다. 그러자 정상문 일당이 차에서 뛰어나가 나이 많은 남자를 둘러업고 돌아온다. 운전사는 품에서 칼을 꺼내보지만 발이 묶여 아무 짓도 할 수가 없다.


"너 누구야! 거기 안 서!"


운전사가 제자리에서 외치는 사이 정상문 등은 차를 몰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가 조수석에서 뒤를 돌아보니 잡혀온 그 남자는 겁에 질려 동그란 눈알을 굴리고 있다.


"너네들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암요. 의원님을 모르겠습니까? 내 손으로 찍었는데요. 깡패 두목을 보디가드로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의원님도 이쪽 사람이었군요. 하하하."

"너네들 이거 실수하는 거야. 인생 종 치고 싶어서 그래?"

"글쎄요... 누구 인생 종이 먼저 칠 지는 따져봐야겠는데요."


정상문은 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빼곡히 적힌 글씨들을 보며 말한다.


"아휴~ 많이도 해 드셨네. 주로 건설사들이 도움을 드렸고, 룸살롱, 나이트... 아이구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을 하고 다니셨네."


그 의원이라는 사람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지... 지금... 협박하는 거냐? 증... 증거 있어?"

"증거는 이 수첩이고 증인들은 깔렸지요. 어떻게, 대질 심문 한 번 하실까요?"


그제야 그 의원은 정색을 하며 말한다.


"원하는 게 뭔가?"


정상문은 실실 웃으며 대답한다.


"뭐, 해 드신 거에 비하면 큰 건 아니고... 이번에 계획된 리조트 개발권을 저한테 주세요."

"그건 너 같은 양아치들이 먹을 사이즈가 아니야."


정상문은 그 의원의 눈을 보면서 칼로 그의 허벅지를 찌른다. '악!' 하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정상문의 동생이 그 의원의 입을 틀어막는다.


"내가 양아치로 보이나? 양아치는 너지. 공적인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해 먹는 아주 파렴치한 양아치... "


정상문은 내 쪽을 잠깐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라는 듯 고개를 한 번 갸우뚱했다. 그가 칼을 뽑자 그 의원의 허벅지는 피로 물들었다. 그 의원은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대꾸한다.


"이미 서남건설로 내정이 돼 있어. 그들이 누군지 모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이 판에 끼어든 거예요. 서남건설 대표인 흑곰만 잡으면 제천 바닥에서 나를 건드릴 놈은 없지요."

"내가 자네를 밀어준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의원님은 제가 개발권을 따낼 수 있도록 힘만 써주시면 됩니다.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해요. 서남건설 입찰가 정보를 흘려주시면 상문건설이 거기에 백 원을 더해서 입찰할 겁니다. 이상한 생각 하면 안 됩니다. 제 밑에 동생들이 많아요. 따님이 xx 대학에서 피아노 전공하지요... 아마? 꽤 미인이던데. 흐흐흐."

"이런 악랄한 놈들. 그 아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모두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털끝을 건드릴 지 어디를 건드릴 지는 의원님에게 달렸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우리는 인생 막장을 사는 놈들이라 무서울 것도, 잃을 것도 없지요. 많이 가지신 의원님에 비하면."


정상문은 결국 그 의원을 협박한 뒤 리조트 개발권을 얻어냈다. 그의 차가 밤길을 달려 누나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정상문이 나를 내려주면서 말한다.


"난 항상 열려있다.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연락해라. 너도 폼 나게 한 번 살아봐야지..."


내 신경은 온통 누나에게로 쏠려있었다. 얼른 가게로 뛰어들어가 그녀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녀가 홀로 식탁 앞에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선다.


"누나 괜찮아요?"

"민수야, 괜찮니?"


우리는 서로에게 동시에 소리쳤다. 누나가 던진 말 사이로 듬뿍 묻어나는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토록 누군가와 서로 애틋한 마음을 나눈 적이 있나 생각해 본다. 그녀는 쫓기는 나를 받아주었고 나는 그녀를 지켜주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돌봄과 배려다. 그 사이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감정은 엄마로부터 느끼는 그것이나 범접할 수 없는 은주로부터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서로의 눈빛은 수 백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누나를 와락 껴안았다. 내 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는 그녀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 그 어떤 솜이불보다도 포근하고 따뜻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누나는 내가 지켜낸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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