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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필집 1 12화

나에게 기계공학이란 (3)

by Neutron

어느 날 교수님께서 두 편의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U 보트와 붉은 10월 호라는 영화였다. 둘 다 잠수함에 관련된 영화였다. '갑자기 교수님께서 왜 잠수함 영화를 보라고 하셨지?' 하면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며칠 후 교수님은 내 궁금증에 답을 주셨다. 두 편의 영화는 석사 논문 주제에 관한 암시였다. 바로 SONAR 개발에 관한 것이었다. SONAR는 Sound Of Navigation And Ranging의 약자로 음파탐지기를 말한다.


바닷속에서는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는다. 고주파를 가진 모든 전파는 물에 의하여 차단되고 왜곡된다. 바다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직 주파수가 작고 종파인 소리, 음파뿐이다. 물은 수축 이완을 반복하며 오로지 종파인 음파만을 멀리까지 전달할 수 있다. SONAR는 이러한 음파를 탐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적의 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빨리 인지하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어뢰를 먼저 쏘는 쪽이 바닷속 전투에서 승리한다. 소나는 잠수함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소나는 마이크로폰 센서들의 배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의 진동을 감지하여 음파를 전기 신호로 바꾼다. 공기 중에서의 소리를 마이크로폰으로 받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밀도가 큰 물의 진동을 센서로 받을 때는 그 신호가 왜곡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센서의 진동이 거꾸로 물의 진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이 문제를 Interaction (상호작용)의 문제라고 명명하셨다. 이 메커니즘을 알지 못하면 음파에 의해 전달되는 원래의 신호를 제대로 감지할 수 없다.


내 전공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나는 물과 센서의 진동을 컴퓨터에 모델링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메커니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를 이어가서 석사 논문의 주제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진행되었는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IMF의 여파가 국방과학연구소를 비껴가지는 못했다.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이다. 교수님도 지원금 없이는 더 이상 연구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석사 논문 주제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졸업이 1년도 남지 않은 시기에 논문 주제를 다시 정해야 했다. 음파를 연구하며 그동안 공부했던 소음에 관한 지식을 활용해야 했다. 교수님은 산업용 모터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주제로 연구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주셨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모터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주원인은 회전자가 회전하는 동안 발생하는 공기와의 마찰이었다. 모터 내부에서 발생하는 공기 마찰 소음은 모터의 외벽을 타고 밖으로 전달된다. 모터 하우징이라고 불리는 이 외벽은 얇은 금속 재질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 금속 구조물의 진동이 공기를 떨게 하여 우리 귀에 소음으로 들리는 것이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는 정해져 있다. 약 20 ~ 20,000 Hz로 가청주파수라고 불린다. 박쥐는 35,000 Hz가 넘는 주파수로 소리를 내어 먹잇감의 위치 등을 파악한다. 그 소리는 사람이 들을 수 없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모터의 구조를 모델링하고 그 진동패턴에 의해 발생하는 소음을 분석하여 모터의 어떤 부분이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음에 큰 영향을 주는지 먼저 파악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모터 하우징의 두께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소음을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있었다. 여기에 소음이 최소화되는 최적설계 기법을 동원하여 하우징 두께의 최적값을 찾아냈고 이를 설계에 반영하도록 가이드하였다. 이상은 내 석사 논문의 주제였고, 다행히 이 논문은 교수 심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이 논문은 내가 대학원을 입학하면서 상상했던 논문이 아니었다. 나는 무언가 획기적인 연구를 통하여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만한 그런 논문을 쓰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기계공학 석사의 연구 환경은 내가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싶다고 해서 허락되는 것이 아니었다. 기간이 짧았고, 그래서 연구의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교수님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벗어난 주제로 독자적인 연구를 할 환경이 못 되었다. 논문 심사에 통과되고 무사히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만약 내가 물리학 석사 과정에 있었다면 어떤 논문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어떤 천재 물리학자가 세운 가설의 극히 일부를 실험으로 증명하는 연구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 또한 학계를 뒤집어 놓을 만큼의 파격적인 연구는 못 되었을 것이다.


나의 대학원 생활은 여기까지였다. 아주 사소한 논문을 하나 썼고, 교수님의 지도 아래 일하는 방식을 배웠으며, 기계공학 석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가정 형편에 비해 비싼 등록금과 2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이 결과물이 앞으로 인생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지 못한 채 나는 학교를 졸업하였고, 그렇게 사회로 던져졌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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