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수필집 1 11화

나에게 기계공학이란 (2)

by Neutron

대학원 과정은 학부 과정에서 배운 과목들의 심화 과정이었다. 열역학 연구실, 열전달 연구실, 전산 유체 연구실, 진동 연구실, 파괴공학 연구실, 접합공학 연구실 등등. 이름만 들어도 무슨 연구를 하겠구나 짐작이 갔다. 내가 들어간 연구실은 전산역학 연구실이었다.


한마디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격자로 만들어진 자동차 모형이 충돌하여 찌그러지고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해석적 기법을 연구하는 연구실이었다. 흔히들 구조해석이라고 불렀다. 국내 최초의 입자가속기가 포항공대에 있는데, 교수님은 포항공대 재직 당시 그 입자가속기의 구조해석을 맡으셨다고 한다. 가끔 자신이 설계에 참여한 가속기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


"잘 돌아가는 거 보면 신기해."


지금 돌아보면 대학원 2년은 내 인생을 통틀어 오로지 공부에만 미쳐 지냈던 시기였다. 한두 과목을 제외하면 모두 A+를 받을 만큼 열심히 했다. 학부 과정에서 못다 한 공부를 대학원에서 원 없이 했다. 늦은 감이 없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취업 시 지원하는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대학원 학점뿐 아니라 학부 학점도 필수였다. 이미 학부 학점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상황에서는 대학원 학점이라도 잘 받아 놓고 봐야 했다.


지도교수님은 학부생 프로그램 중 공학 수학과 고체역학 과목을 담당하셨다. 나는 고체역학 과목의 수업 조교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 진도에 해당하는 연습문제를 학부생들에게 풀이해 주었다. 고체역학은 내가 기타에 빠져있을 때 D 학점을 받았고 재수강도 안되어 성적표에 D로 박제된 과목이었다. 그런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수업에 참여한 학부생들이 수준 미달 조교에 의해 불이익을 받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나는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전공 필수과목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체, 열, 유체역학을 진짜 열심히 공부하였다. 내가 취득한 학점과는 별개로 나는 그들 과목에 대하여 자신감이 있었다. 그 어떤 조교들보다 해당 과목의 지식과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했다. 교수님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에게 문제 풀이가 아닌 정식 수업 강의를 맡기신 적도 있다. 나는 그 강의를 잘 준비했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내 체질과 잘 맞았다. 나는 어떤 내용을 남에게 잘 설명해 주기 위해 안달이 난 설명충이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충이라는 접미사가 붙는 것처럼 일부 사람들은 나를 벌레 보듯 꺼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와 장소와 대상을 가린다면 굳이 벌레에 비유할 정도로 못 봐줄 캐릭터는 아닐 것이다.


학생들 중에는 유독 눈의 띄는 우등생이 있다. 모든 수업에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숙제도 잘해오며 시험 성적도 좋은, 한마디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다. 교수님의 스타일대로 한 학기에 치러지는 4번의 시험에서 앞의 3번 모두 1등을 한 학생이 있었다. 이 A라는 학생은 내 수업에 매우 열정적이었고 질문도 많이 하였다. 후에 랩(Lab) 회식자리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A라는 학생이 있잖아. 자기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는 거야.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조교형은 이 과목을 배운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깊숙이 알고 있는데, 자기는 그렇게 될 자신이 없다나... 그래서 내가 말해줬지. 교수인 나도 수업 준비 안 하면 강의 못해..."


그렇게 말하는 교수님은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 내가 그동안 공부를 헛되이 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이전 10화나에게 기계공학이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