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필집 1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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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기계공학이란 (4)

by Neutron Mar 08. 2025

IMF 구제금융과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인해 직장 구하기가 매우 힘든 시기였다. 그 어려울 때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고, 사회로 던져졌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취직을 해야 했으며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대구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대기업은 아니었고 소위 중견기업이었다.


기계과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국에서 대규모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한 거의 유일한 이 회사에 합격한 신입사원 40명 중 나를 포함한 기계과 출신들이 30여 명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부산이나 대구 출신들이었고 서울에서 온 신입사원은 나 혼자였다.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의 해인 1999년 1월에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어렵게 졸업했고, 어렵게 얻은 첫 직장인데 아무것도 못 해보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매우 슬플 것 같았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나는 대구에서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신입사원 중에 석사 출신이 나 혼자인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배정된 팀의 팀장님은 나를 '가방끈'이라고 불렀다. 학교를 오래 다녔다고 나를 그렇게 불렀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 아무리 회사 연구소라고 하더라도 고난도의 연구를 수행하거나 박사급 고학력의 연구진을 갖추지 못하였다. 팀장님은 학사 출신이었고, 그 팀원인 선배는 전문대 출신이었다. 내 가방끈은 그들에 비하면 약간 길었다.


처음에 적응해야 했던 것은 사투리였다. 20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서울을 벗어나 생활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매일 사방에서 들리는 경상도 사투리가 신기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될 때도 있었다. 신입사원 기숙사로 사용되던 대구 노원구 아파트에서 동기 5명이 한 채를 썼다.


"씨껍했다 아이가."

"맞나. 가는 와그라제?"


동기들은 집에서, 팀장님과 선배는 회사에서 하루 종일 사투리를 써 댔다. 매일 계속되는 듣기 평가에 익숙해질 때쯤 동기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는데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나왔다.


"치아라 마."


역시 영어는 미국에 가야, 불어는 프랑스에 가야, 사투리는 경상도에 가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우리 팀에서 하는 일은 자동차 헤드램프의 Washing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자동차 헤드램프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이 회사는 당시 국내 자동차 3사(현대, 대우, 쌍용)의 1차 협력업체였다. 앞 유리를 청소하는 와이퍼는 알겠는데, 왜 헤드램프의 청소가 필요한 지 의문이 들지 모른다.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으로 수출되는 모든 자동차는 이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폭설과 진흙 속에서도 램프가 밝은 빛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헤드램프 washing 시스템은 평소에는 앞 범퍼에 숨어있다가 스위치를 누르면 노즐이 솟아올라 헤드램프에 물을 분사하는 방식이었다. 노즐에서 분사되는 유량과 유속, 노즐이 솟아오르는 기계적 메커니즘이 이 연구의 핵심이었다. 회사 연구소에서는 이런 연구를 하는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되었다. 물의 분사에는 학교에서 배운 유체역학이 사용되었고 노즐을 솟아오르게 하는 스프링의 강도 설계에는 고체역학이 사용되었다. 헤드램프 표면에 분진을 발라 놓고 물을 분사하는 실험을 계속하였다. 닦인 정도에 따라 램프 밝기에 차이가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가장 깨끗하게 닦일 지를 연구하였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처음으로 사회에 써먹는 순간이었다. 나름 보람이 있었다. 그 대가로 월급을 받았고, 이렇게 평생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되고 대기업 채용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발 빠른 동기들은 그 회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중견기업이다 보니 월급이 대기업만큼 많지 않았고, 근무 환경이나 복지도 대기업만큼 좋지 못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는데,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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