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책상이랍니다
서랍이 여럿 달린
그 속엔 머리핀에서
잉크 굳은 만년필까지
사소한 것일지라도
의미 없는 건 없답니다
부쩍 말수 줄어든
폐경기 무렵부터인가
좀처럼 마음의 문
열지 않겠다는 듯
서랍은 꾹 다문 입술
은밀함을 키워요
맨 아래 서랍 속으로
꼭꼭 숨어든 그녀
낯선 도시 소인 찍힌
몇 통의 편지 두고
하나씩 퍼즐 맞추듯
시간을 유추하기도 하죠
화로 속 불씨처럼
비밀도 많답니다
장난하듯 불쏘시개
뒤적거린 날에는
붉은빛
초경의 꿈을 영락없이 꾸고 말죠
*모바일 화면을 고려하여, 시조의 행 배열을 실제와 다르게 변경했습니다.
나이 들수록 마음속 서랍이 하나둘 늘어난다.
그 속에는 잡동사니는 물론 오래된 편지와 잊혀진 이름 그리고 자신만의 작은 비밀과 기억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특히 여자의 서랍에는 소소하지만 남자와는 다른 그 뭔가가 있다. 이 시 속의 ‘그녀’는 나 자신이기도 하고 동시에 세상의 수많은 여자이기도 하다.
여자의 일생을 보면 젊은 날의 설렘도 중년의 덤덤함도 모두 한 사람의 생을 이루는 결이 된다. 그중에서도 중년의 시간은 겉으로는 무던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뜨겁고 무언가를 품고 있는 시기다.(내가 살아보니 그렇다.)
우리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서랍을 열어보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그 순간이 잊고 지냈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맨 아랫서랍> 까지 열어볼 용기까지는 쉽지 않다.
그래도 이참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서랍 한 칸쯤은 열어보자. 고작 '성냥 한 개비'가 전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탁— 그어서 켜보는거야.
부싯돌처럼, 새로운 불씨가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