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벗어나다

by 노영임


길 위에서 벗어나다


S# 1.

횡단보도 건너고

방지 턱 넘어설 때

슬쩍슬쩍 브레이크

밟아준다면 그만

길 위를

요리 조리로 핸들 꺾으며 달렸지

S# 2.

까짓것 8만 km쯤

끄떡없이 더 달릴 텐데

허우대 멀쩡해도

연식이 오래됐다면 그뿐

계기판

주행거리가 쫓겨난 증거란다


S# 3.

구인광고지 옆구리 낀 채

신호 앞에 선 중년사내

길에서 길들여진 만큼

질주하고 싶은 충동

발끝이

움찔거린다 액셀러레이터 밟듯


*모바일 화면을 고려하여, 시조의 행 배열을 실제와 다르게 변경했습니다.


우리가 길 위에서 겪는 순간은 다른 듯하지만 다 엇비슷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잠시 멈추는 발걸음, 방지턱을 넘을 때 출렁하는 흔들림, 차의 계기판에 쌓여만 가는 숫자들.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우리 삶의 흔적이자 기억이다.

길은 곧 인생이다. 길 위에서 벗어난다는 건 단순히 도로를 떠나는 것만이 아니다. 젊을 때는 끝없이 뻗은 도로 위를 달리듯 어디까지나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질주하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관성에 길들여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느새 중년이 되어 돌아보면 몸은 예전 같지 않다. 현실은 속도를 줄이고 멈춤을 받아들이라 한다. 더 달릴 수 있음에도 접어야 하는 순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 아직 더 달릴 수 있단 말이야!" 외치는 것은


단지 무모함일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