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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5. 2020

증오: 마이너스적인 사랑

증오하면 할수록 그 마음, 더욱 불타오르리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무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몰래 할 수만 있다면(몰래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 테니까) 당장이라도 두개골을 박살 내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물론,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존재인만큼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같은 다양한 감정은 우리의 삶에 늘 함께한다.


 결론은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겠지만 선함이나 도덕적 기준에서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현실적인 면에서 증오를 자제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학부 때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기에 뛰어난 학생들의 학점 받침돌이 내 주 역할이었지만, 경제학이 내 인식 세계의 구성요소가 되어준 것은 좋아한다. 경제학에서 여러 가지 핵심 개념이 있지만 단 한 단어만 고르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 희소성이다.


 경제학은 희소성 때문에 발전한 학문이다. 무엇인가가 충분하지 않고 한정되어 있기에, 이런 제한된 조건에서의 최적화,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 나오는 예산 제한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풀어 말하면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는 흔한 상황을 의미한다. 제한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갑자기 증오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경제학으로 가서 희소성의 개념을 가져왔다. 사실 희소성의 개념이 이 이야기에서 제일 중요해서 그랬던 것임을 양해 바란다. 이제 이 희소성이라는 개념을 우리의 마음, 정신 그리고 에너지에 적용을 시킬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무한하지 않다고 전제하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마음과 정신이 함께 하듯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으면 그만큼 사용 가능한 영역은 좁아지게 될 것이다. 한정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증오로 채우면 채울수록 다른 것을 채울 수 없게 된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증오라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언가를 열렬히 증오하면서 마음과 정신을 소모하게 된다.


 우리의 에너지도 무한하지 않다. 마음의 무한성 논란보다는 더 명백하리라. 무엇인가에 불같이 화를 내었고 계속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자. 우리의 에너지가 화내고 신경을 쓰는 비중만큼 할당되고, 남은 만큼만 남아 있을 것이다. 숫자로 바꿔보면 100 만큼이 우리의 에너지라 해보겠다. 70만큼 무엇인가를 증오한다. 이제 남는 것은 30이다. 증오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사실 1의 에너지도 부여하는 것이 아깝겠지만, 지금 70이나 써버리고 있지만 증오에 사로잡힌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무관심보다는 열렬히 증오하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그 존재가 잘 안되었으면 좋겠고, 나한테 약점을 보여줬으면 좋겠고, 그런 것이 발견되면 비웃어야겠다, 쓰레기 같은 자식,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이런 것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이 우리의 마음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면, 해도 손해는 아니겠지만... 사실은 크나큰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어쩌겠는가.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똑같이 마음과 정신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잘 보면, 누군가를 증오하는 사람은 그 대상을 굉장히 잘 안다. 비록 부정적인 요소겠지만 말이다(긍정적인 요소는 외면할 것이고). 그가 한 말들(망언), 그가 한 행동(만행), 그가 한 실수들(깨소금).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비웃고 조롱하고 저주하는데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과 에너지가 필요한지. 증오를 한다면서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과도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그리고 이런 멍청한 짓에 일가견이 있는 게 나 자신이다. 현명한 여러분들께서는 이런 우행을 범하지 않으시리라).


 증오하는 대상이 있다면, 증오하지 않는 것,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 자신을 위한 최선이다. 증오하면 할수록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이다. 마치 뜨겁게 사랑하듯이. 그렇게 마음과 정신을 쏟아붓고, 한정된 에너지를 빼앗겨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과 정신, 유한한 에너지를 위해 증오라는 사치를 우리가 싫어하는 대상에게 베풀어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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