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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Sep 14. 2021

타인을 너무 신경 쓰지는말자

   먼저 제목은 결코 "예의범절을 무시해도 좋다"든지 "방약무인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예의, 에티켓 등은 민주시민의 기본 소양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주관보다도 타인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는 일에 대한 것이다.


   살다 보면 남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먼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에 신이 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몇 가지 이유로 인해서 나는 오지랖에 대해서 그것이 어떻든 간에 머릿속의 안건으로 올리고 검토는 진행한다. 대부분의 경우 채택이 되지 않지만, 채택이 된다고 한들 타인의 의견이니 내 주관을 뒤흔들 만큼의 발언력을 가지지는 못한다.


   물론 내게 충언이나 고언이 될만한 소재에 대해서 인정을 더디게  하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열심히 해보게 된 것도 친구의 쓴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부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듣기 싫은 소리라고 바로 폐기했다면 브런치 활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게 꽤나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 쓴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위의 모든 것들은 내 주관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성립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나름의 원칙과 생각이 있고, 이것들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경 쓰고 있지 않다. 오지랖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지랖에 면역일 수 있는 이유는, "타인은 나에 대해 잘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기 마음조차 알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에 속한다. 충고와 오지랖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경우가 많은데, 대개 "타인이 나에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갈리게 된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의 말은 충언과 고언이 될 확률이 높지만, 나를 잘 안다는 조건이 꽤나 어려운 조건이기에 부정확하며 오지랖이 되고 만다. 그래도 충언과 오지랖을 바로 결정하는 것은 또한 오만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일단 들어보기는 한다. 그것이 나를 크게 바꿀 확률은 낮지만, 혹시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일깨울 수도 있을 테니까.


   면역인 이유 두 번째는, 나는 맨입인 게 싫다. 입으로만 떠드는 것은 돈도 들지 않으며 하는 자들에게는 즐거운 일인 경우가 많다. 특히 오지랖인 경우에 그렇다. 만약 우리 주위에 오지랖을 부리려면 건당 500원은 내라고 하면 우리의 주위는 훨씬 조용해질지도 모르겠다. 아마 충고를 들을 줄 모른다며 툴툴 대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대해 평가하는 것"조차 매우 부정확할 테니 큰 의미가 없다.


   남의 마음은 미지의 영역이고, 자기의 마음은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남의 마음만큼의 미지의 영역은 아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이 뜬 구름 잡는 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중 우리에게 도움이 될 법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건지는 것이 좋겠으니 수많은 뜬 구름 잡는 소리를 듣는 것이 경청의 배포가 될 것이다.


   어쨌건 우리를 잘 모르는 것이 분명한 자들의 시선이나 생각 등에 전전긍긍하고 살면 얻는 것은 매우 적고 피곤한 삶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깊은 근본부터 예의 있지 않지만(뿌리는 불손한 편),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도구로서의 예의 정도는 탑재하고 있는 중이다. 나를 잘 모를 것이 뻔한 자들의 간섭과 참견은 웃는 얼굴로 적당히 듣고 들은 한 번은 생각해본다. 내게 도움이 되면 채용하고, 뜬 구름 잡는 소리면 폐기한다.


   타인과 제대로 교류하려면, 자신만의 주관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주관이 없다면 타인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쉽고, 타인의 수보다 타인의 의견은 더 많이 존재하니 이러한 무비판적 수용의 끝은 파멸뿐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너무 휘둘리는 일이 많다고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지에 대해 확립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확립을 하다 보면,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은 타인의 것일 뿐 내 것이 아니고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적당한 수준에서의 취사선택이 가능해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규정하든,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내버려 두고 자신이 추구할 것을 계속한다. 이러면 타인을 신경 쓰면서 생기는 피로감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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