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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Oct 07. 2021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좀 제발.

   나는 6년 차 직원이고, 한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다. 이 기간 동안 꽤 많은 경력 이직자들이 있었고, 대부분은 몇 년 혹은 몇 개월 내로 철새처럼 떠나갔다. 오늘은 특히 부적응을 보였던 자들의 세계관에 대해서 좀 돌이켜보려고 한다.


   나는 원래 굉장히 신랄한 인간이기 때문에, 브런치에서는 꽤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다니던 곳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출신들도 많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런 곳에 신입 공채로 들어가서 10여 년, 20여 년 다닌 끝에 결국 나갈 때가 되어 나왔다는 것은 결국 "도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과거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른바 현재 완료 시제). 내 편협한 시각으로 봤을 때 편히 안주하며 살다가 진급을 못하거나 임원이 되지 못해서 쫓겨난 자들이 중소기업에 많이 흘러들어 간다. 이건 아마 내가 다니는 곳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 출신이라는 것 자체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기에 중소기업에 임원으로 오고 하는 것이긴 하겠고, 일부는 능력이 있겠지만 내가 만난 자들은 별로 능력이 있지 않았다.


   중소기업에서만 6년을 다니다 보니 가보지는 못했지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랑 어떤 점이 다를까 생각해봤을 때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점이 제일 크지 않나 생각한다. 도태된 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 체계를 잡아가는 것이었을 것 같지만, 잘 짜인 체계 속의 한 부분 역할만 하던 사람들이라 대개 아래와 같은 패턴을 보이곤 했다.


-"A에서는(A: 자기가 오래 다니다가 도태돼서 나온 곳) 이렇게 업무 진행하지 않는다(대개 낯설게 느껴지는 절차가 있으면 이해할 생각보다는 저렇게 지르고 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A에서 이렇게 했으니 여기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 기타 비슷한 의미를 함유한 이야기들


   기존 회사에서 도태돼서 나왔으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본인들의 처지를 별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본인의 출신은 채용 때에 끗발을 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의 사람들은 꽤나 실리주의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좋은 출신 같은 것은 처음 인사할 때 정도 빼곤 안중에도 없다. 그저 정말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선진적(?) 문물을 이곳에 적용시켜서 기여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며, 그렇지 못하다면 그다지 존중해주지 않는다. 


   일단 본인의 어떤 노하우가 있는지는 사람들이 관심도 없는데 스스로도 새로운 환경에 대해 공부하고 적응하려고도 하지 않으면 그저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 뜬 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기인 취급을 받을 뿐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는 게 맞지만, 다른 곳에서는 다른 곳의 법을 따르는 게 맞을 것이다.


   아쉽게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도태자들은 자기의 몸에 밴 것만을 끌어안고 사는 앵무새들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그들은 어느 정도 새로운 회사에 큰 기여를 할 수도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번역"하고 "적용"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 뜬 구름 잡기가 되거나 무시당하거나 하며 중소기업 다니는 연놈들이 출신 좋은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고(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대부분의 기간을 썩은 표정들로 지냈으니) 많이들 떠나갔다. 여러 대기업 출신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크게 기여를 한 사람은 없었다. 기여랄 것도 없고 대부분을 나는 하찮게 여겨버렸다. 저러니 도태되었겠지라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자기에게 익숙해진 것만이 옳다며 남에게 우겨봤자 받아주는 경우는 없다. 자기가 알고 익숙한 업무 방식이 맞다고 맞다고 앵무새처럼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자기가 익힌 업무와 새로운 환경을 분석해서 새로운 길을 제안한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도태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이런 유사회사에는 오지 않을 테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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