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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Oct 27. 2021

결핍감의 결핍

   지금 생각하기에 결국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의 증명"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계속 증명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파국에 이른 결정적인 깨달음은, 아마 두 사람 다 알아버리고 만 것 같은 그것은, 서로가 있든 없든 더 이상 각자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각자 알아서 잘 지내는 상태였으니 그렇게 조용하게 관계는 끝났다.


   몇 년간 지속되었던 연애가 결말을 맞고, 거기서 몇 개월이 더 지난 시점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각성된 부분이 있기에 열심히, 의욕적으로 살고 있지만 연애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은 상태였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으며, 무엇보다 외로움이라는 건 옆에 누군가과 일대일로, 애정으로 묶여있다 해서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니까 이중으로 갈증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으니, 친구들 중에 결혼을 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조사는 챙기기 위해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왔었다.


   다녀오고 며칠 뒤에 그 친구가 자신의 반려자의 친한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하였다. 위에서 이미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 약간은 망설였다. 하지만 기왕 선의의 제안도 해준 일이고, 어떻게 보면 또 새로운 인연의 기회일 수도 있으니 수락하였다. 여러 사항 중 가장 큰 제약이었던 것은 물리적 거리. 생활권이 멀리 떨어진 장거리 연애(잘 된다면)가 될 상황이 있어서 망설임도 조금 있었으나 좋은 인연이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니 약속을 잡고 다녀왔다.


   내 선에서 어느 정도 노력은 했으나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태도가 있어서 금방 잘해보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머리로는 매우 잘 알고 있지만(적극적인 어필은 필수!라는 것) 그럴 마음이 점점 들지 않게 되니 마음이 머리를 이기지 않겠는가? 속담에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라고 했다. 대우 명제를 쓰면 "우물을 파지 않는 자는 목이 마르지 않다"가 되겠다. 약간은 의미 불명이 되었지만, 나는 현재 결핍감이 없다. 그러니 연애를 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도 노력이 수반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걸 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 않는 것인지, 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내가 바뀐 것이나 내 자존감이나 이런 것들은 거의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니 담담하다. 확률은 낮겠지만 주선 같은 것이 들어온다면 받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현재의 내 심리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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