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Jan 16. 2023

선물의 가치: 아끼는 것이어야 한다

   두목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연초부터 짜낸 계획이 하나 있다. 인맥을 따라서 자신의 나라의 물건을 큰 마음을 먹고 판촉 발송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인맥이라는 것은 일단 내가 봤을 때 확실히 인맥에 들 성격의 것이다. 특정 직업군(특히, 아마도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선망할 전문직들이다)에게 인맥을 통해서 발송한다는 발상자체는 좋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유효 기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효 기간이 없는 물건들도 세상에는 존재하지만(신기하게도 아이스크림이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보통 회계적이든 상식적이든, 두 측면 모두에서 창고에서 오래 묵혀져 있는 물건은 가치가 낮아진다. 창고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며 팔리지 않는 물건이기에 재고라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맥들에게 재고를 보낸다는 발상 자체를 번뜩이는 생각, 유레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이 계획은 파기함이 옳을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내로라하는 자들일진대, 그들에게 주기 위해 새로 만든 물건도 아니며 남은 기한도 애매하다. 여기서 애매하다는 말도 나는 최대한 두목을 두둔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내가 저 인맥들 입장에서 저런 물건이 선물이랍시고 온다면 나를 놀리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싼 밥 먹는 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다음 달까지 먹어 치워야 하는 인기 없는 라면 몇 박스를 보낸다면 과연 그들이 고마워할까.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 두목은 굳이 사서 노력해서 자신의 신용과 신뢰를 깎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믿고 있다니... 하지만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창고지기인 나로서는 어찌 되었건 그것이 두목의 생살 까먹기든 아니든 애물단지가 줄어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는 정말 좋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두목과 그의 왕국을 위한 일은 절대로 아니지만 말이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물을 할 때는 그것이 자신에게도 가치가 있고, 타인에게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 제목에도 썼듯이 아끼는 것이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두목의 번뜩이는 계획은, 자신에게 있어서 가치가 없는 물건을 가지고 선물용으로 쓰려고 하는 점이 큰 문제다. 그나마도 작은 왕국에서 두목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 못지않은, 각자의 왕국 정도는 가지고 있는 사람들(결국 그들도 그들의 영역에서는 두목 정도 된다)에게 저런 애물단지인 물건을 보낸다니 용감도 하다. 용감하기보다는 무지에 의한 무모함이겠다.


   두목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고, 나도 경계로 삼을 만한 것은 "나 자신만이 영리하며 똑똑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지금 두목이 하는 행동은 사실상 자신의 얄팍한 계획을 심모원려라고 생각한다는 증거가 된다. 일단 이 수준으로는 심모원려는커녕 무난한 계획조차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쉽게 통용될 만큼 타인도 어리숙하진 않기 때문이다. 뭐, 나 자신도 우쭐하며 도취되는 일이 많으니까 두목의 이런 모습이나 주는 깨달음에 대해서 나와의 차이는 오십보백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겸허함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비공개 거나, 전체공개 거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