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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4. 2020

사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당신

2=1? 아니다.  2=2이고 1=1이다.

 암수 한 쌍이 각각 눈 하나 날개 하나만 있어서, 나란히 함께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비익조라는 상상 속의 새가 있다. 문학 작품은 셀 수 없지만 비익조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 중의 대명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오른다. 둘 중 하나가 없어지는 것은 전체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이야기들이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2-1=0이 된다. 즉 2=1.


 로맨틱하고 애틋하지만 안될 일이다. 일단 동시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한날한시에 눈을 감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둘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곁에서 떠나가거나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과연 건강한 사랑일까.


 지금 내 글들에 온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1,000일이 넘도록"은 "자책하는 사람들에게"보다 나중에 쓰였기 때문이다. "자책하는 사람들에게"에서 가장 비중이 컸던 그가 "1,000일이 넘도록"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는 물들기 쉬운 사람이었다. 무엇인가에 빨리 물드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는 느리더라도 색이 확실히 배어버리는 의미에서 물들기 쉬웠다고 생각한다. 그의 전전 연인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본인이 가진 매력과 능력에 비해 늘 자신감이 부족했고 위축되어 있었다.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자책이 심했고, 자학적, 자조적인 심리가 있었다.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전전 연인이었다.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게 만들어놓고 떠나가 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애의 초기에는 그런 전전 연인의 대체적인 존재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지, 형성되어 있는 심리 체계를 부정하거나 고치겠다거나 그런 오만한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는 영민한 사람이기에 그런 시도를 했다면 바로 경고했을 것이기도 하다. 그저 어느 정도 내 색,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물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었다. 그래서 그냥 전전 연인의 자리에 내가 대체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그 자신의 매력과 능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연애의 초기에는 비익조와 로미오와 줄리엣과 꽤나 비슷한 상황이었다. 뜨겁고 열렬한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뜨거움과 열렬함에 1이 0이 되도록 불살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존재 의의가 다른 사람에 귀속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단적으로 "나를 떠나간다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쁘기보다는 걱정이 되었다. 문자 그대로 아닌가. 그는 진지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저건 절대 공갈이나 협박이 아니었고 그저 절절한 심경의 토로였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아플 것이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일단 그때는 꼭 안아서 달래줬지만.


 전전 연인이 남겨 놓은 상처가 그렇게 깊게 남아 있었기에, 언제나 이야기할 때는 최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살려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대단한 일이라면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훌륭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 좋게 봐주는 것인걸"이라고. 그럴 때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고, 그가 훌륭하기에 칭찬하는 것이라고 했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서히 그가 바뀌어가는 부분이 있었다. 좀 더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자신의 능력과 매력에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절대 일방적 교육이나 가르침 같은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일 뿐이다. 그저 나는 그가 좀 더 근거에 합당한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가졌으면 했다. 초기에도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스스로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1,000일이 넘도록"에서 서로 간의 부족함이 쌓여서 이별을 하게 되었음을 여러분들에게 고백했지만 추가적인 사항으로, 일단 이별의 끝을 결심한 것은 그였다. 나도 끝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음과 현실이라는 복잡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를 붙잡을 명분이나 자격은 없었다. 그렇게 서로 조용히 떠나가게 된 것이 지금이다. 그는 전전 연인과 이별했을 때의 그와 다르다. 그는 언제나 영민하고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다. 담담한 이별의 통보에서 옛날처럼 누군가의 애정을 받기 갈구하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없이 살 수 없었던 사람에게 더 이상 당신과 함께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서글프기보다는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 나는 다른 누군가를 나 없이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거나 각자의 세계는 절대적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를 내 세계의 재료로 삼는 것에는 부정적이다. 아마 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나 또한 배우고 그에게 받은 것이 너무나 많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 좋은 사람이다. 분명 앞으로도 그에게 더 좋은 인연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새로운 인연이 찾아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을 깊게 사랑하고 앞으로 나아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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