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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4. 2020

화양연화를 부정하는 이유

 나는 화양연화라는 말을 부정한다. 의미도 좋고 어감도 예쁘고 멋진 영화도 있고 유명 가수의 앨범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정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은연중에 지금의 자신과 상황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내 반면교사로서 맹활약해준 혈육이 있다. 그의 화양연화 시기는 명백하다. 그는 대학 들어가기 전부터 동경했던 대학 동아리 활동이 있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뤄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때가 그의 화양연화의 시기다. 그는 그때를 지금도 그리워하고 현재는 상당히 불만족스럽다.


 그만의 아름다운 시절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옆에서 관찰해온 혈육으로서는 특별히 감정이 이입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주로 술을 많이 마셨던 행태라든지 동아리 친구들이랑 놀러 가서 놀이기구에서 부주의한 부상을 입었다든지 학점이 망했다든지 같은 객관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까지 그 시절이 그의 화양연화였을지 공감은 잘 가지 않지만 본인이 좋다면 양잿물도 OK 아니겠는가? 쓴소리는 그와의 파괴적인 의사소통으로 인해 큰 깨달음을 얻어 이제는 별로 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무튼 그의 소중한 기억을 대놓고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화양연화에 대해 경계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 혈육은 지금의 인생이 너무나 불행하다. 그리고 그의 전성기(그가 홀로 생각하기에)는 십 수년 전의 일이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시는 그만한 시기가 자신에게 없을 것이라는 사고의 흐름이 느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이도 들고 몸도 그때 같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만 되뇌는 사람이 현재에 전력을 전개할 수 있지 않다. 과거의 자신이 경험했던 제일 좋았던 그 어떤 것에 사로잡히면 현재의 나는 격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왜? 이미 나이도 들었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때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일 것이다(그의 세상에서는). 어떤 반짝거리는 과거의 한 장면을 장식하기 위해 나머지 모든 장면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쉬울 리가 없다. 노력을 해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을 했다(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고 건설적이다). 화양연화로 여길 수 있는 시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이룬 성공을 위해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화양연화라고 여겨질 수 있는 시기가 있는 사람은 내 혈육과 마찬가지로 타인(이 글에서는 나)이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내 공식적인 입장은 "(공감은 별로 가지 않지만 그래도) 행복했었다니 다행이구나"이다.


 나는 화양연화라는 시기를 기리기엔 내세울 성취도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과거의 나를 박제해놓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걸 내 최대의 성취로 여기고 싶지도 않다. 나는 지금 살아있고 현재를 산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화양연화라면 화양연화다. 그냥 화양연화라는 시기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충실하고 우직하게 살아내면서 매일매일을 화양연화로 여기면 좋지 않나 생각한다.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힌 나는 재미가 없다. 성공도 실패도 지금 맛보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면 생의 남은 나날이 모두 화양연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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