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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n 18. 2021

각자의 이야기 책

무엇을 적어나갈 것인가

   유명한 사람이든 아니든, 통 크게 회고록을 쓰기도 하고 아니면 소소하게 일기를 쓰곤 한다. 이런 형태를 갖춰진 책들은 온전히 개인 소장이 될 수도 있겠고, 인쇄물을 통해 출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전자 문서가 되어 멀리멀리 퍼져나갈 수도 있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진 이야기 책들은 그래도 사람 수보다는 적다. 모든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성립하므로 반례를 찾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애써서 만들지 않았더라도 모두에게는 각자의 이야기책이 있다. 엄밀히 말해서 회고록이든 일기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회고록이 있는 사람은 회고록과 함께 자신만의 이야기책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회고록이나 일기가 없다면 자신만의 이야기책만이 존재할 것이다. 애써 쓰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에도 모두에게 기록되는 책들이 존재한다.


   이 이야기책의 구성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용물도 그것의 흥미 요소도 각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단 두 가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점이 있다. 첫째는 사람마다 페이지수는 다를지언정 페이지수는 유한하다는 점이다. 짧고 굵은 책도 있고, 길고 얇은 책도 있고, 길고 굵은 책도 있을 것이나 무한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책은 없다. 페이지수는 수명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인간은 없다.


   둘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좋든 싫든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일정 기간 동안 내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만 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는 시작과 끝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끝이 다가올수록 시작과 끝이 계속 반복되어 떠오르곤 했다. 이 시기의 시작과 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이 시기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은 정말 끝이 다가왔을 때에만 보이는 것을 그때 경험했다. 그러니 분명 각자의 이야기책은 책의 맨 마지막 장에 다가갔을 때 눈앞에 펼쳐질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은 회고록과 일기와 같이 세상에 남겨놓은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은 읽을 수조차 없지만, 오로지 각 책의 주인들 만큼은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 이 책은 좋든 싫든 계속 각자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읽힐 것이다. 아, 내 인생은 이랬구나 하고 곱씹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이야기책이 완결되었을 때, 앞부분의 상당 페이지들은 처참할 것이다. 나는 택도 없이 게을렀고, 태만하였고, 이 유한한 페이지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페이지엔 이런 식으로 적혀 있을 것이다. "201X 년의 나: 딱히 한 거 없음". 다행으로 나는 의욕을 얻는 법을 익혔고, 남아있는 유한한 페이지에 대한 소중함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언젠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순간이 왔을 때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길 갈망한다. 인생을 바꾸기로 한 순간부터 실제로 그것을 이뤄내는 내용이 들어가 있게 할 것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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