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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n 21. 2021

회사와 수렴 진화

사이비 회사라면 어서 도망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폐급 직원이다. 현재만 뚝 잘라서 관찰해보자면 그렇다. 내가 다니는 곳은 막장드라마의 배경으로 적당할만한 사이비 회사이다. 나는 폐급이라 여기를 다니고 있는 것인가, 여기를 다니면서 폐급이 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순환적인 고찰을 해봤다. 흔히 닭이 먼저인가 아니면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무엇이 먼저라고 해도 일리가 있겠다. 하지만 내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요소에 집중하기로 한다.


   "폐급 직원이 폐급 회사에 와서 더한 폐급으로 거듭나는 중"이라는 것이 내 현재에 대한 자아 평가다. 얼마 다니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자들은 이 폐급 회사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의가 필요한 점은 폐급에 적응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생태 다큐멘터리를 보면 깨끗한 1 급수에서만 사는 생물도 있고, 4~5 급수에서 사는 생물도 있을 뿐이다. 1 급수에 사는 생물을 4~5 급수에 넣어도 죽을 것이고(이건 확실한데), 4~5 급수에 사는 생물을 1 급수에 넣어도 죽을 것이다(이것은 확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의미이다. 폐급 회사에서 생존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우위와 열위가 있을 리 없다.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와 더불어 다 년간 동고동락한 자들이 있는데, 내가 봤을 때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못났다. 동기부여나 자기 계발에 관한 것을 보면 "당신이 어울리는 사람들, 당신의 주위 환경 등 모든 것이 당신의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거울"이라는 말이 꽤 빈도 있게 나오는데, 정말 사실이다. 이 회사에서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오래 다닌 사람들은 대개 다 엇비슷한 무언가가 되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수렴 진화라 칭하고 싶다.


   각자 어느 정도 달랐겠지만 이 폐급 회사라는 환경에서 어느 정도 버틸만한 성격이나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던 자들이, 몇 년이 지나서 엇비슷한 무언가로 닮아버리고 만다는 것은 내게 극심한 공포로 다가오는 사실인 것이다. 엇비슷한 못난이를 비웃는다면 오십보백보이며,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나 또한 적전 도주를 범한 것이요(오십보백보의 고사는 적을 앞에 두고 도망간 두 명의 병사 이야기인데, 50보 도망간 병사가 100보 도망간 병사를 비난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원전이다), X 묻은 주제에 남에게 겨가 묻었다고 조롱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수렴 진화가 잘 된 이 회사의 무언가 들은 어느새인가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며, 마침내 공범이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피해자였으면 빨리 도망쳤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이 정도 햇수로 다니면서 불만만 많아봐야 아주 같잖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게 되었다.


   그러니 혹시 어떤 이상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최대한 그곳을 빨리 벗어나게 되길 추천한다. 그곳에서 이상해지고 있는 대다수의 무언가 들의 체념과 푸념과 절망에 휩싸여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그들이 하는 것도 엄연한 선택이며, 대다수가 하는 선택이라고 무조건 옳고 좋은 선택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뛰쳐나오지는 않더라도, 철저히 벗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 폐급 회사에 대해서만 잘 수렴 진화될 것이고, 이는 곧 정상적인 곳에서의 퇴화를 의미하니 남은 것은 도태뿐이리라. 회사가 당신의 몸과 마음을 죽이고 있다면 극복하는 방법은 그러한 나쁜 회사를 최대한 빨리 떠나는 것뿐일 것이다. 시간은 지금도 계속 흘러가고 있다. 결심하고 행동할 때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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