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7(일)
전날 일찍 잔 덕분에 늦지 않게 잠에서 깨었다. 창밖의 날씨는 조금 흐렸다. 날씨 때문인지 요 며칠 업텐션으로 지냈기 때문인지 몸도 마음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집을 떠났기에 적응 시간이 필요했나? 왜 이렇게 기분이 다운될까 싶었는데, 매주 일요일 오전마다 줌으로 만나 안부를 나누는 두잇두잇줌 멤버 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깨달았다. 공연이 있는 주말이 지나면 정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백지 같은 평일이 다가오는데, 그게 막막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부산까지 왔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과 강박이 스멀스멀 올라온 거다. 진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숙소에서 쉬고 싶다면 그래도 되는 건데!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공연 전까지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너무 마음을 놓은 탓에 헐레벌떡 공연장에 도착하게 되기는 했지만… 오늘도 역시나 공연은 좋았다. 여전히 심란한 마음 때문인지, 좌석이 사이드였는데 무대 방향으로 앞자리에 앉으신 분의 앉은키가 커서 무대 중앙을 너무 가리셨기 때문인지 중간중간 집중하지 못했던 순간은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맑음언니와 공연 끝나고 만나서 이런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본진의 퇴근길을 우연히 본 건 또 선물 같았네. 물론 본진도 퇴근길을 좋아하지 않고, 나도 심장 떨려서 기둥 뒤로 숨어버렸지만…
아, 공연에 집중을 제대로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갑작스레 뜬 본진의 스케줄 때문인데...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에 대구에서 열리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딤프) 어워즈가 그것이었다. 가네마네 하다가 맑음언니도 다음날 재택이 가능하다고 해서 부산에서의 숙박을 하루 더 늘리셨다. 덕분에 우리는 함께 또 맛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부산역과 초량역 사이에 있는 새로 오픈한 조개구이집에 갔다. 맑음언니의 표현대로 '마음을 먹고, 각을 잡고 나의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술술 내면의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는 게 신기했다. 나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어쩌면 옷깃 스칠 일이 없던 사이였을 수도 있지만, 덕질이 계기가 되어 만나서 이렇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니. 어쩌면 좋아하는 대상이 같아 공명하기 때문에 혹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같다는 것은 결이 비슷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렇게나 단기간에 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는 걸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맘때의 기억이 흐려지더라도 맑음언니와 함께했던 이날의 밤은 어쩐지 선명하게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부산으로 유배를 떠나오기 전에 ‘이번 부산행의 컨셉은 여름방학이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다
무시무시한 이름의 셀프유배기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간의 심경 변화는 또 뭐였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