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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Jul 10. 2024

덕후여, 덕을 쌓자

2024-07-08(월)

그러니까 정말 마법 같은 하루였다.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할 수 있다고?' 싶어서 얼떨떨하고 어안이 벙벙할 정도. 그 감각을 글로 잘 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글로 남겨봐야지.


발단은 갑자기 뜬 본진의 뉴 스케줄이었다. 토요일에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딤프) 어워즈 신인상에 노미네이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ㅁ언니와 신나서 자리를 확보했다. 그런데 팬카페에 일요일 점심쯤이었나 본진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공지가 올라왔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표를 취소했다. 그러다가 다시 공연 직전에 공지를 보니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재공지가 올라온 거다. 공연 10분 전에 일단 눈에 보이는 자리 중 그나마 제일 앞쪽 자리를 예매해 두고, 그것도 어느 자리가 더 나을지 재다가 원래 예매하려고 했던 티켓 수의 2배를 예매해 두고 공연을 보러 들어갔다. 혹여나 본진 참석에 변동이 생길까 봐, 혹은 공연 중에 좋은 자리가 날까 봐 전전긍긍하느라 공연에 100% 집중을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와보니 티켓 취소 기한인 17시가 넘어 있어 취소가 불가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ㅁ언니와 함께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은 가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일요일에 그렇게 빛나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었다.


딤프 어워즈에 가기로 한 날 아침. 밍기적 거리며 일어나서 요가로 몸을 풀어내고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천천한 오전을 보냈다. '오늘 당일치기로 대구를 간다고...?'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올 때면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팬카페의 한 회원님께서 딤프 어워즈에서 올려준 참석자 실루엣 게시글로 본진이 참석할 것 같다는 글을 올려준 것이다. 본진을 보면 당연히 너무 좋고, 아니어도 그냥 에피소드 하나 더 쌓았다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와중에 오버부킹(?) 해버린 티켓은 팬카페 내에서 나눔을 했다. 티켓 값이 많이 비싸지는 않지만 버는 돈이 없는 백수라 양도를 할까 고민도 했는데, 너무 행사 당일이기도 하고 그동안 팬카페에서 받은 호의들과 선의들이 있으니 그것들에 작게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눔을 했다. 다행히 두 자리 모두 나눔 할 수 있었다. 나눔을 요청하신 두 분 중 한 분은 사실 원래 팬카페 회원분이 아니라 티켓 나눔을 검색하시다가 급하게 가입하셨다고 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이참에 본진을 영업하자는 마음으로 나눔을 했다. 실제로 더 나눔을 요청하시는 회원분이 계시지 않기도 했고.


15시쯤 ㅁ언니의 숙소에서 언니의 차를 타고 대구로 출발했다. 하늘을 두툼하게 가려낸 구름 사이로 해가 슬쩍슬쩍 눈부신 빛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묘한 날씨였다. 평소라면 이런 날씨에 다소 가라앉았을 것 같은데, 이렇게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쩐지 일탈처럼 느껴져 짜릿하다고 ㅁ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슬쩍 들뜬 마음을 나누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막힘 없이 차가 쭉쭉 대구로 향해 달려 나갔다. "저 원래 평소에 음악 엄청 크게 들으면서 운전하는 것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ㅁ언니에게 "언니, 그렇게 음악 틀어봐 주시면 안 돼요!?"라고 했다. 언니는 씨익 웃으며 "안 될 게 뭐 있어요. 당연히 다 되지!" 하면서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엄청 크게 틀 테니까 놀라지 말고, 중간에 마구 소리 질러도 되고, 창문 내려도 되고, 편안하게 즐겨요."라고 덧붙였다. 이내 음악 볼륨이 엄청나게 커졌고, 차의 속도도 함께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쿵쿵 울리는 음악의 진동이 마치 나의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언니 말대로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며 음악과 바람과 속도를 느끼다 보니 갑갑하던 마음이 와르르 비워지는 것처럼 후련하다가 이내 생경하고 낯선 처음 느끼는 감각이 주는 충만한 행복감으로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가 탄 차는 대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딤프 어워즈 행사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에 도착했다. 티켓 배부 시간에 거의 딱 맞게 도착해서 언니가 주차를 할 동안, 차에서 내린 나는 티켓을 먼저 수령했다. 그리고서는 18시부터 행사가 진행될 레드카펫 옆으로 섰다. 이미 사람들이 꽤나 있어서 우리는 한 2열쯤 서서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투둑투둑 내리기 시작하는 거다. 다행히 우산을 챙겨 와서 펼치는데, 앞에 서 계시던 분과 거리감이 가까워서 내 우산을 이 분께도 씌워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선생님, 우산 제게 씌워드릴게요. 실은... 선생님께서 우산을 펼치시면 시야가 가려질 것 같은 사심 때문이지만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분께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라고 흔쾌히 대답해 주셨다. 덕분에 분위기가 누그러져서 서로 어떤 배우를 보러 왔는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행히 비는 이내 그쳤고 18시가 되자 레드카펫 행사가 시작되었다. 딤프를 통해 발굴된 신인 배우들부터, 딤프에서 공연된 작품들의 배우들, 대중에게 너무나 익숙한 유명한 배우들까지 한 팀 한 팀씩 레드카펫 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딤프 어워즈 신인상 후보들이죠. 임규형, 최태이 배우입니다."라는 사회자의 소개말이 들렸다. 그때 내 앞에 서 계시던 분이 나를 돌아보며 "규형 배우님 입장하실 때 자리 바꿔드릴게요."라고 하더니 나를 자신의 자리에 세워주셨다. 갑자기 레드카펫 1열에 서게 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벌벌 떨렸다. 저 멀리서부터 본진이 걸어오면서 점차 내게 가까워졌다. 1 열이라 앞에 걸리는 것 없이 내 카메라에 본진을 가득 담아낼 수 있었다. 최대한 정신을 똑띠 차리려고 했던 약 3분의 시간이 지나고, 내 본진이 건물 안으로 입장하는 것을 끝까지 보고는 다시 그분과 자리를 바꾸었다. "진짜 정말 감사합니다. 저 진짜 너무 떨렸어요..."라고 거의 울먹이는 나에게 그분은 "별말씀을요! 손 벌벌 떠시는 것 다 봤어요."라며 다정하게 웃어주셨다. 나름의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조금 더 기다리고 있다가 김준수 배우님 입장할 때 영상을 찍어서 그분께 에어드롭으로 전달해 드렸다.


레드카펫에서의 행운에 얼떨떨해할 새도 없이 행사 전에 티켓을 나눔 해드리기로 한 분들을 만나서 티켓을 전달해 드렸다. 다행히 크게 엇갈리지 않고 무사히 티켓을 전달할 수 있었고, 티켓들이 주인을 무사히 찾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크게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카톡이 왔다. "애호박님, 혹시 딤프 어워즈 행사장에 계시나요?" 이전에 본진의 다른 지방 스케줄에 함께 했던 팬카페 회원 쌤이셨다. "제 지인이 급한 사정으로 갑자기 못 오게 되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애호박님께 표를 드리고 싶어서요. 아까 카페에서 티켓 나눔 하시는 것 봤거든요. 지난번에 지방 다녀올 때도 너무 감사했고요." 이어서 온 카톡을 보면서 '오늘 정말 뭐지... 이렇게나 많은 기쁨과 행운들이 따르다니...' 싶었다. 좌석은 지금 가지고 있는 자리에서 약 10열 이상 앞자리였다. 그러나 티켓은 단 한 장. 요 며칠 나를 살뜰히 챙겨준 ㅁ언니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일단 연락을 주신 쌤께 약간은 무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 정말 염치불고하고 티켓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같은 팬카페 회원님인데 저 여기까지 태워다 주신 쌤이 계셔서, 그분께 표를 드려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그리고 그분의 대답은 YES! ㅁ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언니가 그 자리에 대신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언니가 엄청나게 난처해했다. "언니, 저 언니 오글만 빌려주시고 제발 그 자리에서 봐주세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덕분에 정말 엄청나게 행복했단 말이에요. 음... 언니에게는 근거가 중요하니까 가장 최근의 것을 하나 딱 말씀드리자면, 아까 대구 오는 차에서 난생처음 느끼는 종류의 해방감과 충만함을 경험했어요. 언니가 아니었으면 못 했을 경험이고, 못 느꼈을 감정들이에요. 그걸 제게 선물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머쓱하지만 꼭 언니가 앞자리로 가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제야 언니는 알겠다고 했다. 언니와 바로 옆자리에서 호들갑과 주접을 떨며 시상식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웠지만.


행사 시간에 임박해 대구오페라극장에 들어서니 구조가 좋아서 내가 앉은자리에서도 시야와 음향이 정말 좋았다. 물론 약간의 거리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무대 위 배우들의 표정이 맨눈으로도 어느 정도는 보였다. 물론 본진을 보러 그리고 수상을 응원하러 온 것이기는 했지만 어워즈를 여는 첫 무대인 대학생 뮤지컬팀의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면서는 떨리는 마음을 다소 진정시키고 반짝이는 의상과 화려한 발재간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소리의 탭탠스로 가득한 무대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다가온... 떨리는 순간. 딤프 신인상 부문 시상. 함께 노미네이트 된 후보들이 워낙 쟁쟁해서, 내가 우리 배우를 믿고 응원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후보 영상이 나올 때 응원의 마음을 담아 크게 환호성을 지르는 것뿐. 그런데... 딤프 신인상... 그게 현실이 되었다!!!!! 임 규 형, 세 글자가 마저 다 불리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손이 다시금 벌벌 아니 온몸이 벌벌 떨렸다. 사실 특히 쟁쟁하다고 생각했던 다른 후보가 있었는데, 그 후보와 공동 수상을 하다니... 생각도 못한 전개였다. 공동 수상을 한 배우와 함께 무대로 향하는 기뻐하는 본진의 표정을 보면서 같이 가슴이 벅찼고,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진정성 있는 소감을 말하는 본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의 울 뻔했다. 진짜... 이걸 내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정말 너무 축하하는 마음이었고, 소감을 들으면서는 크게 위로받기도 했다. 말을 어쩜 그렇게 예쁘게 잘하는지... 이러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요...


기쁜 마음으로 남은 어워즈를 만끽했다. 100분이라던 딤프 어워즈는 장장 3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어워즈가 끝나고 공연장 밖에서 ㅁ언니를 만나서 약간 얼빠진 얼굴로 이야기했다. "오늘 하루... 정말 이럴 수 있는 건가요? 이렇게나 많은 행운과 행복이 있을 수 있는 건가요...? 제가 정말... 덕생을 잘 살았나 봐요."라고 얘기하며 앞으로도 덕을 계속 잘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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