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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Jul 11. 2024

들뜬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

2024-07-09(화), 10(수)

2024-07-09(화)


본진의 첫 주 공연 일정과 시상식 일정까지 나흘 정도가 폭풍 같이 지나갔다. 전날 대구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느라 부산집에 돌아오니 1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흥분한 상태로 직접 찍은 레드카펫 영상과 수상소감 영상을 보면서 축배를 들다가 3시 반이 넘어서야 잤다. 몸이 피곤해서 엄청나게 늦잠을 잘 줄 알았는데, 잘못 세팅된 알람과 여전히 들뜬 마음이 합세해서 오전 7시가 조금 되기 전에 잠에서 깼다. 다시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아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10시쯤 잠이 스르륵 오길래 잠깐 눈을 붙였다.


다시 깨어난 건 12시였다. 들뜬 축제 같은 나날이 지나고 모든 게 착 가라앉은 것만 같이 느껴졌다. 실내에만 있다가는 더 깔아질 것 같아서 기운을 내어 나왔다. 밥집을 찾아서 김치찌개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천천히 전포 거리를 거닐었다. 작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정말 많았다. 어떤 오브제 샵에는 직접 들어가서 구경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매거진 B에도 나오고 민주님께서도 추천해 주신 히떼 로스터리가 길목에 있길래 냉큼 들어갔다.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주문서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작성해서 바리스타님께 전달하면 되는 주문 방식인 것도 좋았다. 카운터에 서서 메뉴를 고를 때 매번 약간의 조바심을 느끼는 사람으로서는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카페 메뉴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했던지. 드립 커피를 시키고는 전날의 마법 같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다이어리에 일기를 써 내려갔다. 나는 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는 몰라도 한 번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주저리주저리 다이어리에 한 가득을 써내는 편이긴 한데, 어제의 일기는 무려 다섯 페이지나 썼다. 다른 날의 일기가 많아봤자 두 페이지인 것을 감안하면 전날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 사이에서 많은 생각과 감정이 흘러나왔던 것 같다. 일기를 쓰고는 책을 읽었다.



2024-07-10(수)


생활 패턴이 다소 요상해졌다. 전날에도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또 7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서 밍기적 거리다가 책을 읽을 집중력까지는 아니어서 웨이브로 <모든 패밀리>를 봤다. 내용이 술술 이어져서 4화를 단숨에 봤다. <모든 패밀리>는 레즈비언 커플과 게이 커플의 일상과 이들의 일상을 4인 정상 가족, 산부인과 의사, 성직자, 외국인 등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들의 반응까지를 함께 보여주는 관찰예능식의 다큐라고 할 수 있겠다. 이성애 유자녀 형태의 가족이 여전히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런 기획이 메이드가 되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조금 슬프긴 하지만... 정말 유의미했다고 생각했던 지점은 모든 패밀리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생경함과 불편함을 표현했던 일부 관찰자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이들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더 다양한 삶이 가시화될 필요가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10시쯤 또 졸려져서 스르륵 잠들었다. 영화를 예매해 두어서 알람을 맞춘 채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러 갔다. CGV서면으로 보러 갔는데, 재개발 대상 건물인지 안에 영업하는 매장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6층에 있는 영화관에 도착하기까지 건물 분위기가 으스스해서 다소 무서웠다. 그런데 그 덕분에 오히려 237석이나 되는 영화관에서 나 혼자 영화를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 1> 이후 9년 만에 나온 <인사이드 아웃 2>는 주인공 라일리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와 더불어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불안이, 부럽이, 당황이, 따분이라는 감정 사이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를 정말 잘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불안'이라는 감정이 점차 대다수의 사람에게 디폴트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가 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일단은 나에게는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흐렸던 날씨가 어느새 쨍쨍해졌다. 서면과 전포 사이의 거리들을 구경하다가 이번에는 트레져스 커피에 갔다. 드립 커피를 위한 원두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바리스타님께 취향을 말씀드리고 몇 가지 추천받은 원두 중에서 과테말라 엘 소코로 게이샤 원두를 선택했다. 작년에 컵 오브 엑설런스에서 2위를 한 원두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래서 가격이 꽤나 비쌌지만 궁금함에 선택했고,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천천히 맛있는 커피를 음미하면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들었던 생각을 다이어리에 써 내려가기도, 관련된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비슷한 루틴의 이틀 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흥분으로 마구 들떴던 지난 사흘을 차근히 정리하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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