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중국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현 Nov 25. 2018

상해, 마지막 낮과 밤

#상해일기 7. I ♥ SH


상해에서의 마지막 날. 열 시에 조식 마감인데 아홉 시 반에 가서 그런가 바닥을 보인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먹는 김치와 볶음밥은 인기 메뉴가 아닌지 많이 남아있었다. 케첩 볶음밥에 계란 프라이-반숙-를 얹고 김치와 함께 먹었다. 후르츠 칵테일을 듬뿍 넣은 요거트와 오렌지주스로 마무리. 자 이제 나가보자.



상해의 낮


가장 먼저 신천지에 갔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예원에서 도보로도 이동 가능한 거리였지만 (물론 진짜로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지도로 봤을 때는 충분히 가능한 거리였는데.) 한여름 상해의 더위는 어마어마했고 아침부터 힘을 빼고 싶지 않아 전철을 탔다. 신천지에 있는 카페 거리와 상해 임시 정부에 가자고 생각만 하고 그곳들을 가는 법을 찾아보진 않았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1번 출구로 나왔다. 1번 출구는 신천지에 있는 쇼핑몰 건물과 연결되어있었으나 D를 제외하곤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도 끌리는 것들이 아니라 바로 나왔다. 쇼핑몰에서 나오자마자 <대한민국 상해 임시 정부>라는 간판이 보였다. 시작이 좋다. 오늘 우리의 운이 좋다며 들어가려 하니 1시 30분까지는 휴게 시간이라 지금은 입장이 불가하단다. 운이 좋다 말았구나. 별 수 없이 잠시 후를 기약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가로수가 참 많던 신천지. 바로 위 사진과 다른 골목이다.


목적 없이 골목을 돌아다니다 카페거리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도를 켜거나 블로그 등에서 가는 법을 찾아본 게 아니고 걷다 발견하면 가는 것으로 했다. 신기하게도 카페거리에 입구에 다다르자 '오, 여기가 카페거리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다른 거리보다 비교적 정돈되어있었고 건물들도 멀끔했다. 카페거리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내가 보았을 땐 칭다오의 구시가지보다도 더 유럽 느낌이 났다. 상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와서 그런지 알수록 신기한 곳이었다. 골목마다 풍겨내는 분위기가 다 달라서 눈에 보이는 작은 골목마다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들어간 분위기 좋은 이탈리아 음식점. 짧은 골목 하나에 음식점이 꽉 차게 들어서있었다. 간간이 펍도 섞여있고. 모두 다 가보고 싶었으나 그중 가장 끌리는 곳에 들어가서 피자와 샐러드, 파스타를 시켰다. 가장 먼저 오렌지주스가 나왔는데 미지근해서 깜짝 놀랐다. 생과일을 갈아 만든 건 확실한데 상온에 있던 오렌지와 미지근한 물을 갈았는지 주스가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중국에 올 때마다 음료를 시킬 때는 시원한 것을 달라고 요구해야 했고 또 요구했지만, 생과일주스가 미지근할 거라곤 생각지 못해 미처 말하지 못했더니 이런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어서 피자와 파스타가 나왔으나 모든 것을 한 번에 맛볼 수는 없었다. 메뉴 하라를 다 먹으면 그제야 다음 음식이 나올 정도로 느렸던 곳. 심지어 아보카도 샐러드는 주문이 누락되었단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재차 주문해서 굉장히 늦게 나왔지만 맛은 괜찮았다. 샐러드만 괜찮았다.



식사 후 다시 상해 임시 정부에 갔다. 입장료 20위안을 내고 밖으로 나와 건물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 내가 왜 임시 정부까지 와서 이명박과 박근혜, 이승만의 흔적을 봐야 할까. 그들의 자손들이 모두 파멸의 길을 걷길. 그들을 뽑은 사람 모두가 평생 후회하며 살길.) 임시 정부 내부를 둘러보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했다. 뭔가 내내 허무했다.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또 감사하기도 하고. 볼거리가 많거나 오래 머무를만한 환경도 아니었다. 사실 임시 정부가 보통 볼거리를 찾아가는 곳은 아니긴 하지. 아, 곳곳에 서있던 중국 관리인들이 조금 불쾌했다. 그들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기분 나빴다. 임시 정부의 방문은 여러모로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래도 상해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이 곳에 들렀으면 좋겠다.



티엔즈팡은 거대한 기념품샵이었다


신천지에서 조금 벗어나 상해 예술가의 거리라는 <타이캉루 티엔즈팡>에 갔다. 이번에는 지도를 켜고 걸었다. 입구가 여러 곳에 있으나 우리가 찾아간 방향의 입구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좁은 골목에 역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간판에 달려있었다.



티엔즈팡에서는 돈을 꽤 썼다.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느낌이라길래 돈 쓸 일이 없겠구나 싶었건만, 이곳이 외국이라는 것을 잊었다. 어느새 상업화된 인사동처럼 이곳에서도 기념품을 잔뜩 팔았다. 일단 지인들에게 줄 미인 크림을 잔뜩 샀다. 미인 크림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D가 아는 체 하기에 샵에 들어갔다가 향을 맡아보고는 여러 박스를 샀다. D 말로는 보습력도 괜찮단다. 케이스도 적당히 중국 느낌이 나고 가격에 비해 퀄리티도 괜찮아 덥석 집어 들었다.

티엔즈팡은 예술가의 거리라기보다 기념품 거리 같았다. 여기저기서 미인 크림을 팔고 마그넷을 팔았다. 그리고 차도 팔았다. 예쁜 틴케이스에 담긴 차는, 차를 마시지 않는 나조차도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D는 이곳에서 차를 잔뜩 샀다. 한국인들이 많은 것을 보니 어디 블로그에 올라왔던 모양이다. 미인 크림을 사며 현금을 잔뜩 썼던 터라 차는 카드로 사려했던 D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 티 하우스는 현금 결제만 된단다. 그래서 일단 이곳에서 남은 현금을 다 쓰고 미인 크림을 환불받기로 했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처음 미인 크림을 사러 갔던 곳으로 갔더니 환불이 불가하단다. 중국인들은 환불 잘만 하던데, 우린 왜 안돼? 대화가 원활하게 되는 편이 아니라 그럼 현금을 돌려받고 카드로 재결 제하겠다니 그것도 안된단다.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안된다고 우기는 것 같았으나 실랑이하기도 귀찮고 대화도 제대로 안되어서 그냥 나왔다. 이렇게 D는 현금 거지가 되었다.



거대한 기념품샵 같았던 티엔즈팡이 예술가의 거리로 변모했던 순간이 있다. 티엔즈팡 거리 한구석에 있는 벤치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던 예술가를 보았다. 이제야 예술가의 거리라는 명성에 맞는 느낌이 들었다. 즉석으로 그려주는 초상화의 화풍에 반해 우리도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다. 20위안 정도 생각했는데 물어보니 80위안. 앞선 쇼핑으로 거진 모든 돈을 탕진했기에 돈이 없어 70위안으로 깎았다. (예술품을 살 때만은 흥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돈이 없었다.) 일단 가진 돈이 가장 많은 나부터 초상화를 그리고 그다음으로 P의 초상화를 신청했다. 25위안이 남은 돈 전부라는 P의 말에 내 돈 30위안을 보탰다. 그래도 55위안. 예술가에게 "얘는 가진 돈이 55위안뿐이라 그림을 못 그릴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그럼 55위안에 초상화를 그려준단다. 내가 P에게 30위안을 건네주는 모습을 보고 빵 터진 예술가는 우리에게 손 키스를 날리며 웃었다. P의 초상화를 다 그리고 예술가가 D에게도 초상화를 그리라 하였으나 이젠 정말 남은 돈이 없어 (내 개인 경비 50위안이 남아있었으나 우리의 공금도 아슬아슬해서 만일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결국 이 돈은 공금에 추가되었다.) 아쉽지만 패스했다. 이게 다 미인 크림탓이야.


숙소로 돌아와 기념품을 풀고 눈을 붙였다. 그리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리 피곤하지. 여행을 하며 쌓인 피로가 이제야 오나보다.




상해의 밤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 예원으로 갔다. 예원역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고 이제야 예원에 오다니.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갈 곳이 많았단 말이야. 밤의 예원은 반짝반짝했다. 와이탄의 야경보다도 훨씬 반짝이고 멋있었다. 이래서 다들 예원은 밤에 가라고 했구나. 아직 제대로 된 예원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예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상점들마저 '여기가 예원이야.'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오늘은 입장권을 사지 않고 초입만 둘러보기로 했다. 밖에서만 보아도 충분히 넓고 멋졌는 걸. 어차피 예원은 내일 아침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오기로 했으니까.



예원에는 유명한 먹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빨대 만두다. 흐물거리는 커다란 만두에 빨대를 꽂아 그 안에 기름을 빼먹고 이어 만두를 먹는 것. 유명하단 얘기만큼 맛없다는 얘기도 많아 우린 빨대 만두 대신 기본적인 샤오룽바오를 먹었다. 유명해도 맛없는 건 먹고 싶지 않아.



예원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러 난징동루로 가기 전 와이탄에 들렀다. 예원의 야경이 더 좋았다고 해도 일단 상해 야경 하면 와이탄이니까. 평일이라 그런지 주말의 낮보다 사람이 적었다. 이곳에서 야경을 찍기 위해 가져온 삼각대를 꺼냈다. 비록 볼헤드가 고장 나 제대로 된 사진은 건지지 못했어도 사용한 것에 의의를 두자. 와이탄은 별 감흥이 없었다.



난징동루까지는 전철을 타고 이동하려 했으나 지도를 보니 걸어갈만해서 걸었다. D가 세포라에 가고 싶어 해서 난징동루와 인민광장의 세포라를 찾아갔으나 둘 다 없었다.

1. 난징동루점 : 난징동루 1번 출구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으로 가서 세포라를 찾았다. 상해 인민광장에 M&M이 있는데 그 옆에 세포라가 있단다. 그리고 이 신세계 백화점에도 M&M이 있으니 그 옆에 당연히 세포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말이야. 우리 동네 GS 편의점 옆에 파리바게트가 있으니 옆동네 GS 편의점 옆에도 파리바게트가 있을 거란 소리란 뭐가 다른 거야.

2. 인민광장점 : 인민광장 M&M이 입점해있는 쇼핑몰 1층 전체가 리모델링에 들어갔단다. 고로 M&M은 영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M&M 옆에 있는 세포라는 문을 열까? 당연히 안 열지. D는 M&M이 있는 층이 전체 리모델링에 들어간 것도, 세포라가 그 옆에 있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세포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왜 이러는 걸까.


그래도 여기까지 온덕에 사진에서나 보던  I ♥︎ SH를 보았으니 괜찮다고 치기로 했다.



슬슬 배가 고파 <동베이차이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P가 찾아온 곳으로 나름 맛집이란다. 꿔바로우와 우리가 중국에서 가장 열광했던 음식인 토마토 스크램블을, 그리고 나를 위한 밥과 김치를 시켰다. 음식은 전부 맛있었고 김치도 중국에서 먹은 것 중 가장 먹을만해서 다 먹었다. 밥이 3인분은 되는 것 같았는데 김치가 있으니 그다지 많아 보이지도 않아 내가 다 먹었다. 한국인은 역시 밥심이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표를 사고 전철을 타러 들어갔더니만 막차가 끊겼다. 아니 막차가 끊겼는데 대체 표는 왜 파는 거야. 1위안도 아까운 처지지만 환불은 번거로워 포기했다. 터덜터덜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해.


2017년 8월 22일

캐논 EOS 6D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한 나라의 디즈니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