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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Nov 28. 2018

안녕, 상해

#상해일기 8. 그래서 상해는 어땠냐면



상해 여행 마지막 날. 오후 네 시 이십 분 비행기로 숙소에서 한 시반쯤 출발해도 넉넉하겠지. 그래서 오전에 <예원>에 가는 일정을 넣었다.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른 것을 보니 오늘 하루도 덥겠구나. 한국을 비롯해서 대만, 베트남 등 다른 곳은 비가 엄청 내린다는데 상해가 그곳들의 더위를 다 가져왔나 보다. 출발 전 한국에서 상해의 날씨를 찾아보았을 때 여행 기간 내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린다기에 '이번 여행은 망했다.'라고 걱정했었는데. (나는 원래 비 내리는 것을 싫어한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의 감상 따위는 내게 없다.) 걱정이 무색하게 여행의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햇빛이 뜨거워졌다.



효심으로 지은 정원


예원은 무려 400여 년 전 명나라 시대에 지어진 정원이란다. 효자 정원이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식이 부모를 위해 지은 정원인가 보다. 더 찾아보니 이를 지은 자식은 완공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죽고 그 부모는 완공된 모습을 아예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효심을 후대에 이렇게 알아주니 그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예원으로 들어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그 다리는 아홉 번 꺾여 있다고 한다. 이 정원을 지은 일가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강시가 되어 쫓아오는 것이 무서워 구불구불하게 지었단다. 강시가 되어 쫓아갈 정도면, 효심은 지극 하나 다른 이들에게는 매정했다는 건가. 아이러니.



예원은 대만의 <임가 화원>을 죽 늘려놓은 것 같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보다 못했다. 일단 너무 복잡했다. 이른 아침에 가면 비교적 사람이 적다기에 고즈넉하지는 않더라도 시끄럽지는 않을 줄 알았자만 역시 중국은 중국, 엄청난 사람들이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래, 중국은 언제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다. 그것을 잠시 잊은 나의 불찰이지 뭐. 여유가 사라져서인지 정원의 매력이 반감되었다. 푸른 나무들도 바람에 흔들려 시끄럽게 구는 듯했고 정원의 붕어들도 꼬리로 물을 세게 치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점점 더 더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통구이가 될지도 몰랐다. 예원을 벗어나자.



급히 나가던 중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예쁘다. 고양이에 시선을 빼앗겨 그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나를 잘 달고 다니다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 고양이. 정말 요정이 아닐까?





덥고 이 근방에는 더 이상 둘러볼 곳도 없어 예상보다 더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예원역 4번 출구에 있는 미니 트럭 가게에서 중국식 토스트를 샀다. 토스트라고 하기엔 애매한데 파르페라고 하기에는 더 애매해서 그냥 토스트로 칭한다. 숙소를 오가며 자주 보았던 트럭인데 우리가 갔을 때는 남은 재료가 별로 없던 것으로 보아 아침 식사 대용으로 판매하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짠내투어에서 정준영이 중국 유학 시절 먹었다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밀가루와 달걀, 베이컨, 케찹 조합이니 맛없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트럭은 그 힘든 것을 해냈다. 숙소에 남겨두었던 콜라와 함께 먹었는데 맛없었다. 밀가루로 만든 저 빵 같은 게 맛없던 건가. 반은 남겼다.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서 삼십 분가량 쉬다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륙 세 시간 반전에 공항 도착. 평소 이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면 아주 이른 편이라 여유롭겠거니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짐 검사만 두세 번을 하고, 짐 검사 줄 외의 모든 줄이 엄청 길었다. 긴 줄과 그에 따른 기다림은 디즈니랜드에서 충분히 적응했다 믿었지만 모든 기다림은 언제나 지루하다.

그래도 아주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발권 줄에 서있는데 일명 대포 무리를 만났다. 우리 줄 맞은편에 검정 마스크를 쓴 남자아이 한 명이 있고 그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있었다. 익숙한 이 풍경은 분명 대포다! 그때부터 우리는 저 남자아이가 아이돌일까 배우일까 아니면 얼짱 같은 SNS 유명인일까를 한참 생각했다. 여권을 보니 중국인이었는데 그래서 더 헷갈렸다. 한국 스타는 아니지만 (어느새 스타로 격상되었다) 나름대로 중국 쪽도 기웃거리고 있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전혀 감도 못 잡았다. 과연 그는 누구였을까?



해 지는 시간에 비행기를 탄게 처음이던가, 오랜만이던가. 다만 돌아오는 날의 비행시간을 보고 멋진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무척 설레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상해를 떠나 인천으로 돌아오는 하늘 위에서 내내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록 우리 쪽보다 맞은편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훨씬 더 예뻤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래서 상해는 어땠냐면,


중국의 하늘은 참 넓다. 아니 칭다오에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으니 '상해'의 하늘은 참 넓다고 해야겠다. 한국보다 땅이 넓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서울처럼 여기저기서 보이는 산이 없어서 그런 건지 하늘을 볼 때 시야에 걸리는 것이 별로 없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낮은 나무숲이 전부라 '하늘이 이렇게 넓다는 걸 처음 알았네.'라 했다. 하늘이 넓어 보여서인가 구름도 큼지막하게 보였다.

의외로 곳곳에 많던 나무. 고속버스를 탔을 때와 공항을 오가는 자기 부상 열차 magev를 탔을 때 눈에 띄었던 크고 작은 숲들. 역시 대륙답게 넓은 땅덩어리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던 나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 정화가 안된다니 신기하다.

끊임없는 새치기의 향연. 칭다오에서는 자주 찾아보기 힘들었던 미개한 행동들. 그중 최고는 단연코 새치기.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순간에서나 그들은 새치기를 했다. 아이들을 앞세워 새치기를 한 후 아이들 뒤로 자연스럽게 합류하더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른들 틈으로 끼워 넣는다. 특히 디즈니랜드에서는 더 심해 기겁했다. 그렇게 싸우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왜 남들이 새치기를 할 때 (대부분) 가만있나 했더니 본인들도 다른 순간에 새치기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마냥 가만있던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수에 비해 가만있었다는 것이지, 싸우던 중국인들도 많이 보았다.)

세상의 중심은 나다. 괜히 중화사상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여기서는 중국이 아니라 내 중심이니 말을 조금 바꾸어야겠지만. 무더운 여름이긴 했지만 그래도 옷은 다 갖춰 입어야지 거리 곳곳에 웃통을 벗은 남자들이 포진해있었다. 은행 앞에서도, 관광지에서도, 시내 한복판에서도 더우면 상의를 벚어젖혔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더우면 벗는 것이다. 너무 덥다 싶은 날은 아이들의 바지와 속옷까지 다 벗겨서 데리고 다니더라. 뭐 중국인들에게는 그게 자연스럽다 해도 관광지에서마저 그러면 여행자들은요?


여행의 재탕은 없다지만 나는 여행의 재탕을 즐긴다. 오사카는 여섯일곱 번은 다녀왔고 대만은 네다섯 번, 칭다오도 세 번은 다녀왔다. 그렇지만 상해는 잘 모르겠다. 다시 한번 가볼래?라고 물어본다면 글쎄. 매력적인 부분도 많았으나 그에 못지않게 꺼려지는 부분도 많았다. 어쩌면 내가 여행자의 시선으로 짧은 시간 머물렀다 떠나왔기에 단편적인 모습만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게 여행 후에는 한동안 여행지를 앓으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던가 '그곳에서 살고 싶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데 상해는 그런 게 없었다.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없다.


2017년 8월 23일

캐논 EOS 6D




여행일기 #상해 편 연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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