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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현 Nov 23. 2018

이상한 나라의 디즈니랜드

#상해일기 6. 상해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



이상한 나라의 디즈니랜드


인기 놀이기구 외에 탈만한 것이 있나 돌아보다 '앨리스의 미로'를 발견했다. 앨리스의 미로는 액티비티 하게 타고 노는 것은 아니지만, 미로 속에 들어가 이것저것 보며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소설보다도 영화에 충실했던 곳으로 붉은 여왕도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의 모습을 따왔다. 영화 속 신기한 동물들부터 모자장수의 디저트 테이블까지 영화의 축소 판 같았던 미로. 큰 재미는 없었으나 소소한 재미거리가 많았다. 다만 이 곳에서도 질서 개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중국인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렇지만 이젠 거의 포기 상태라 그 짜증을 분출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미로 안에 형태를 왜곡시키는, 사진 찍기 딱 좋은 곳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 셋의 단체 사진을 찍으려 하면 어디선가 중국인들이 나타났다. 보통 다른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있으면 센스 있게 혹은 눈치 있게 피해주기 마련이고 우리 역시 그랬으나 그들은 아니었나 보다. 우리 사진에 같이 나오려고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인기 중국에서 유행하는 최신 놀이인가? 알수록 참 이상한 세계.



앨리스의 미로 속 핫플레이스였던 붉은 여왕의 미로. 미로의 한가운데 있다. 붉은 여왕을 보려면 미로 속이 아닌 미로 앞에 있는 신데렐라 성 입구로 올라가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미로와 붉은 여왕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꽃놀이 외에는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없던 우리는 내리쬐는 더위나 피하기로 했다. 그늘을 찾아 헤매다 (값비싼) 미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물고 중국인들 틈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쉬었다. 어지간하면 벤치를 찾았겠지만 그들도 다 아무 곳에나 철퍼덕 앉길래 그냥 우리도 앉아버렸다. 이럴 때는 편하구나!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 편히 쉴만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발견한 천막! 잔디밭 위에 커다란 천막을 세우고 그 안에 에어컨을 틀어놓았다. 간이 휴게소 같은 느낌. 그래 쉬자, 쉬어야 해. 쉬어야 이 이상한 세계에서 더 버틸 수 있다. 불꽃놀이를 기다리며!





하지만 삼십 분가량을 그렇게 쉬다 보니 좀이 쑤셨다. 상해 그것도 디즈니랜드에 왔는데 놀이기구 하나만 타고 가기는 아쉽잖아? 그래서 '캐리비안의 해적'을 타기로 했다. 일단 근처까지 가서 줄이 길지 않으면 타고, 줄이 길다면 쿨하게 포기하자!


60분만 기다리면 된다는 직원의 이야기에 줄을 섰건만 한 시간 반은 기다린 것 같다. (평소 60분이라면 어마어마하지만 중국 놀이동산에서 60분은 시간도 아니다.) 체감은 서너 시간. '트론'을 기다릴 때보다 훨씬 더 무질서하고 막무가내 새치기에 우리는 그들이 싸우든 마른 해탈 했다. 아까는 잘만 양보하더구먼 지금은 왜 고성방가를 지르며 싸우는 거람. 꺾고 또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줄에 그만두고 나갈 마음도 여러 번 먹었으나 D의 만류 덕에 끝까지 갔다. 시장통 같은 곳을 벗어나서야 겨우 두 줄씩 제대로 줄을 설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이제 곧 놀이기구를 타려는 모양이구나. 중국인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서니 뒤에 있던 한국인 여자 둘이 새치기를 시도했다. 꿈도 크지, 모두가 줄을 잘 서고 있는 그때에 새치기라니. 새치기를 하며 "애새끼들만 뒤로 보내면 된다!"는 등의 상스러운 소리를 했다. 심지어 뒤에서 계속 밀길래 P에게 "뒤에서 자꾸 밀어."라고 했더니 그건 또 어떻게 들었는지 우리에게 "어쩌라고 시발!"이라고 당당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발, 제발, 제발! 중국인들이 새치기하고 개념 없게 행동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러지는 맙시다 거 좀. 그렇게 상스러운 행동을 해서인지 결과적으로 그들을 우리의 한참 뒤로 밀려났다.



그들이 뒤로 밀려날 때쯤 본 캡틴 잭 스패로우의 방.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캐리비안의 해적」 세트장의 일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중국어가 눈에 띄어 김이 새긴 했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지금 내 눈앞에 캡틴 잭의 수배서가 있다고! 비록 중국어로 말하는 캡틴이지만!



드디어, 드디어 놀이기구(라 쓰고 블랙펄이라 생각한다)를 타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에다 놀이기구도 내가 좋아하는 롯데월드 '신밧드의 모험'과 비슷해 보여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많이 흔들리지 않아 다들 사진 찍으며 구경했다. 신밧드의 모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스케일!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바다 위로 올라갔다가 신이 났다. 블랙펄 안으로도 들어갔다가 다시 바닷속도 들어갔다가, 인어공주도 보고 데비 존스도 보고. 계속 타라고 해도 계속 즐겁게 탔을 테다.





칠만 원이 터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불꽃놀이. 디즈니랜드의 꽃이자 신데렐라 성을 더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것. 내 상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불꽃놀이!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에 #디즈니랜드 #불꽃놀이 등을 검색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위치에서 더 아름답게 불꽃놀이를 볼 수 있을까. 일곱 시 반 시작이라길래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여섯 시 반에 신데렐라 성 앞으로 갔는데도 좋은 자리는 잡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다시 한번 시간을 찾아보니 일곱 시 반이 아닌 여덟 시 시작이란다. 앞으로 한 시간 반은 기다려야 하는구나. 나와 달리 불꽃놀이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한 시간 반 동안 그냥 앉아있기 싫다며 뒤로 빠졌다. 아마 굿즈샵을 가거나 주변을 돌아다니다 온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불꽃이 터지기를 기다렸다. 중간에 핸드폰 배터리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서 한 시간가량은 멍하니 있어야 했지만, 나는 이 불꽃을 보러 칠만 원 내고 상해 디즈니랜드에 온 거니까!



여덟 시 반, 디즈니 ost가 나오기 시작했다. 불꽃놀이 시동으로 신데렐라 성에 화려한 조명이 들어왔다. 겨울왕국의 'Let It Go'가 흘러나오고 엘사가 나타났다. 드디어 불꽃이 터진다!


불꽃놀이의 하이라이트는 이게 전부다.


나는 디즈니에 왜 온 것일까? 내가 본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는 조금 더 화려하고 조금 더 컸는데. 절대 한눈에 들어오는 스케일이 아니었는데, 지금 내 눈 앞에서 터지는 불꽃은 한 눈을 감고 봐도 괜찮았다. 왜 다들 감탄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정도에 만족할 만큼 다들 관대한 사람들인가. 본인들의 칠만 원이 이렇게 옹졸하게 터져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칠만 원이라 이렇게 터지는 걸까? 아닌데. 한강 불꽃은 무료인데도 훨씬 빵빵 터졌는데. …… 오로지 불꽃놀이만 바라보고 상해 디즈니랜드에 간다면 말리고 싶다. 트론이나 캐리비안의 해적 등 한국에서는 탈 수 없는 놀이기구나 그 분위기를 느끼는데 목적이 있다면, 뭐 패스트 패스권을 끊고 요령껏 다니면 되니까. 그러나 나처럼 정말 목표가 불꽃놀이뿐이라면 제발 가지 않았으면. 


나의 이 속상함과 분노는 굿즈샵에 풀었다. 자제하려고 했지만 굿즈마저 원하는 만큼 사지 않는다면 이곳에 온 보람이 정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눈에 보이고 마음에 드는 머그컵은 거의 다 샀다. 굿즈에 입장권 가격의 배는 쓴 것 같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먹거리를 잔뜩 샀다. 배가 고픈데 식당에 찾아갈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 편의점을 거의 털다시피 했다. 숙소에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고, 씻고, 밥을 먹었다. 적당히 먹을 만큼 샀다 생각했는데 많이 남겼다. 정말 사치스러운 하루다.


2017년 8월 21일

캐논 EOS 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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