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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Nov 30. 2021

퇴사하고 에버랜드에서 알바한 후기

탈회사 라이프 2주 차

탈회사 라이프 이주 차는 말 그대로 정신없었다. 내가 에버랜드에서 소시지를 팔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쩌다 에버랜드 '레드 앤 그릴' 행사에 참여하면서 일주일간 잠시 맛본 요식업은 또 다른 세계였다. 겁 없는 퇴사자한테 세상이 돈 한 푼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는 것 같았달까.  


알바 제안

“애진아 알바 가능해? 에버랜드 알바야.” 퇴사 소식을 전하자마자 유경 언니가 한 말이었다. 한남동의 핫한 독일식 수제 소시지 델리 집 미트로칼을 운영하고 있는 언니와는 2016년 이탈리아 슬로푸드 축제 테라마드레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세계여행 중이던 나는 무작정 한국 부스를 찾아가 넉살 좋게 일을 도왔다. 부스로 만난 인연 또다시. 부스로 이어진 것이다. 

2016년 이탈리아 토리노 <테라마드레>
2021년 용인 에버랜드 <레드 앤 그릴>




1일 차 : 전혀 다른 세계  

무려 7년 만의 에버랜드를 업장으로 만난 감회는 새로웠다. 하지만 감탄은 찰나였다. 감탄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 같은 좌식 노동자는 온종일 서 있는 일 자체로도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곤혹함이 무색하게 손님은 없었다. 파리만 날리는 우리 부스와 사람이 무려 ‘ㄷ’ 자로 줄을 서 있는 옆 부스를 관찰하며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다. TPO에 알맞은 메뉴 선정 필요, 푸짐해 보이는 플레이팅 등의 답을 얻었다.


먼저, 우리가 있는 곳은 에버랜드였다. 아무리 건강에 신경 쓰는 부모여도 그날만큼은 마음껏 먹어라고 자유를 주는 날이었다. 놀이동산까지 와서 무항생제의 건강한 한돈으로 만든 소시지를 '굳이' 찾지는 않았다. 플레이팅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도 푸짐해 보이는 비주얼이라는 게 있는데 안타깝게도 소시지와 야채는 구우면 맛은 더할지언정 부피는 줄어든다. 고민하는 동안에도 옆 부스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옆에는 몸이 힘들고 우리는 마음이 힘들었다. 


덧, 옆 부스는 돈스파이크 가게였다. 처음 봤지만(심지어 연예인!) 같은 행사부스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지애가 솟은 나머지 말을 건넸다. “장사 참 쉽지 않네요. 화이팅입니다!” 


오늘의 교훈 - 결국은 이 또한 맥락  

    메뉴 선정의 중요성  

    플레이팅의 중요성   

    무엇보다 TPO의 중요성  

그러나 언니가 만든 소시지는 한 번 먹어보면 반드시 다시 찾는 소시지다



2일 차 : 눈치게임 실패

일요일인 이날은, 코로나 이후 역대급으로 많은 입장객이 온 날이었다. 점심은커녕 저녁 먹을 시간도 없었다. 손님들이 물 밀듯이 들어와서 후에는 손이 후들후들 거릴 정도였다. 


손님이 많다 보니 시스템에도 체계가 필요해진다. 그래도 어제에 비해 재료, 소스, 접시 위치 등을 재정비했건만.. 야채 역시 볶음으로 대체했다. 덕분에 착착착 진행되는 것은 좋았는데 그럼에도 더 많은 주문의 양을 이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전에는 너무 손님이 없어 오는 대로 판매하면 됐지만 이제는 새로이 주문번호를 만들어 불러줘야 한다. 영수증 시스템이 이상한 건지 주문번호가 영수증에는 적히지 않아 손님도 직원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는데 우선 누적 번호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케파가 되지 않는 손님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 재료의 양도 따라주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아무리 셰프님 손이 빠르다고 한들 소시지를 굽는 그릴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큰 그릴판에서 구우라는 담당자의 재촉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는데, “케파가 안 돼요 저희 케파가!” 하고 악지르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포스기를 한 번 끄고 가자는 제안에 알겠다면 감사하다고 말했다. 손님의 만족도를 충족시키지 못할 바에는 포스기를 끄는 것(주문을 그만 받는 것)이 낫다. 덕분에 최고 일 매출을 찍으며 큰 일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늘은 무엇이 달랐을까 - 인과관계 파악하기 

애초에 놀이동산에 손님이 더 많이 왔다.

메뉴를 변경해서 더 깔끔하고 있어 보인다. 즉, 푸짐해 보이는 모습은 가성비를 일으킨다.

변경하기 전 사진이 들어간 리플릿을 나눠주지 않는다. 즉, 리플릿 내의 사진 매력도가 실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에게는 큰 장점이 되었다.

타 부스에서 소시지 메뉴를 품절시켰다. 즉, 소시지를 파는 곳은 이제 우리뿐이다.



3일 차: 나는 누구 

유독 무거운 몸과 다르게 이제 한층 노련해진 입은 노래 하듯 손님을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고작 3일째인데 전혀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다른 환경으로 훅 들어와 버렸기 때문인가. 문득, 이전의 여행도 생각이 났다. 내가 일을 하면서 여행했던 이유는 결국 그 사람들 삶을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오늘의 사진 - 지금껏 몰랐던 주방의 모습

에버랜드 뒤편의 주방을 모습은 가히 새로웠다.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음식의 이면이 이러하구나. 내가 집에서 요리해 먹는 식재료의 이면, 그러니까 농수산물의 생산 과정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봤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식당에서 먹는 음식의 이면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거대한 공용 주방 안에서 쉴 새 없이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이들의 존재와 역할이 처음으로 몸으로 와닿았다.  



4일 차: … 

4일째는 진짜 죽을 사(死) 자다. 환상의 나라는 무슨 환장의 나라다. 이런 행사를 무려 11일이나 진행하다니 에버랜드가 단단히 미친 게 아닌가 싶다. 다행히 나만 그런 것은 아닌지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정말이지 요식업계 종사자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오늘의 냄새 - 외면당한 일상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 쾌쾌한 냄새가 났다. 어디서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지 싶었는데 청경채는 녹아내리고 표고버섯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었다. 와… 진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집에 하나도 신경을 못썼구나. 이렇게 냉장고로 내 일상의 현주소가 드러난다.. 



5일 차: 일상화

잠시 며칠간 일상을 정비한 후 다시 합류했다. 오늘은 정말 의욕이 '0'이었다. 일상화된 지겨움, 단조로움. 딱 이거였다. 새로움을 느끼는 일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하는지 그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선함은 사라지고 일상의 지루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대신에 능숙함이 생겼다. 적당한 타협과 시스템을 통한 최적화로 조리 시간을 무려 1/3로 단축했다. 역시 사람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한다.  


주방에서 일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청바지에 검은 티와 모자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이곳과 너무나도 조화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와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고 여겼던 사람들과 다름없는 스스로라니.. 니키 리의 <프로젝트 시리즈>가 생각났다. 


오늘의 생각 - 변하는 것을 멈추지 말 것

새삼 '세상은 계속 변하고 그 변화에 잘 발맞추어 나아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퇴사를 선택한 이유도 어떤 '변화'를 감지하고 그 흐름에 올라타기 위함이었다. 이를 잊지 말고 촉수를 계속해서 곤두세워야겠다. 



6일 차: 드디어 피날레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날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프로세스와 환상의 팀워크를 이루었다. 그동안 나 혼자 다른 부스 사람들에게 어떤 연대감,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마지막이라니까 괜스레 시원'섭섭'했다. 모든 장사를 마무리하고 뒷정리에 바쁜 나머지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 못 건넨 게 이렇게 아쉬울 일인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 있었다.
남의 인생을 잠시 빌려 살아본 기분이다.
회사를 언제 다녔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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