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연말회고] 에필로그
당차게 선로 밖으로 뛰어내렸던 나는 이제 당시의 선택권이 사라진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만약 세상을 주류 비주류로 나눈다면 나는 이제 온전히 비주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왜?'를 묻지 않는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를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고 증명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타인에게 이해나 공감을 받기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올 한 해 동안에는, 종종 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맞아 맞아.”라는 반응을 자주 마주했다. 신기했다.
| 무브먼트와 비즈니스 사이에서
어느 시골언니는 “활동가라는 단어가 가장 싫다”라고 말했다.
어느 연사님은 “저희는 영리 기업입니다”라는 문장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 마음들을 몹시 이해했다. 나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신념을 좇으면 돈이 없어도 만족하고 행복할 거라고? '자기 기준'에서 필요한 물질적 요건이 충족된 사람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3년의 여정 끝에 적어도 당시까지의 팜프라는 운동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부정했기 때문에 더더욱 자괴감과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질문했다.
"무브먼트와 비즈니스는 공존할 수 없을까?"
"아니, 어떻게 해야 무브먼트와 비즈니스는 공존할 수 있을까 "
그 관점으로 올 한 해를 돌아보자면, 나름의 균형점을 찾은 것 같다. 함께하는 동지이자 동료들의 방향을 이해하고 이를 대중에게 설득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시각적으로 매력도를 높이고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며 가치를 확산하는데 주력했다. 모험하는 여자들, 시골 언니들 등 여성 서사와 단체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금전적인 만족도 만족이지만, 무엇보다 감정적으로도 몹시 충만했다. 여기에 이르자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결국 '운동'의 지속가능성과 확산성을 고민했기에 '비즈니스와 기술'을 고민했구나!' 효율과 합리를 ‘똑똑’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모든 애정은 비효율 비합리적이다.
나는 활동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활동가만 되고 싶지는 않다.
| 소모를 줄이고 쌓아간다는 것
프리워커로서 다양한 조직과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워케이션을 키워드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웹3를 공부하며 DAO에 뛰어들었던 모든 것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였다. 최소한 올해까지는 이렇게 해보자고.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개인으로는 한계가 있다. 20대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나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정해야만 했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계획 없이 다가오는 모든 것에 반응하다가는 정말 흐르는 대로 살다가 소모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깊이감이 없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방랑 > 방황 > 방향. 다른 무엇을 찾기 위해 방랑하다가 내 안의 문제와 질문을 발견하고, 방랑이 방황이 되었다. 질문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3년을 지역에서 몰두한 후, 다시 길을 잃고 방황하며 탐색하기를 1년 10개월째. 이제는 다시 방향을 잡고 집중해서 쌓아나가야 할 때다. 소모되는 일보다는 축적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두려운 이유는 아마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 두려움이란 무지에서 나오는 감정 아닌가. 다음 방향을 설정할 근거(ground)가 부족하다.
2022년의 수식어는 '진어무경(振於無竟)'이었다.
상상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경계를 짓지 않고 무한히 뻗어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랐다.
그 말처럼 1년 동안 먹거리, 지역, 여성, 환경, 웹3 등 다양한 키워드를 아울렀다.
이제 조잡하게 넓어지지 말고, 뜻을 세울 시기다.
제대로 꿈꾸기 위해서는 꿈속으로 깊이 파고들자. 깊이 더 깊이.
북극성을 떠올릴 수 있는 마음과 북극성을 향할 수 있는 몸을 기르자.
그래서, 2023년은 '심신단련(心身鍛鍊)'으로 정했다.